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 내역과 진료비를 공개하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이 헌법에 부합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비급여 내용을 보건복지부에 보고하는 법 조항이 국민들이 과도한 진료비 부담을 떠안는 일을 막기 위한 취지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합헌과 반대 의견이 5 대 4로 갈렸을 정도로 헌재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가 팽팽하게 맞섰다. “환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만큼 이 법이 합당한지를 두고 한동안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헌재 “국민 의료선택권 보장”에 무게

헌재는 치과의사 김모씨를 비롯한 의료기관장들이 의료법 45조의2 등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을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기각했다고 5일 밝혔다. 합헌 결정이 나면서 그동안 관련 고시가 나오지 않아 시행되지 못했던 비급여 진료비용 보고 제도가 곧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법 45조의2는 의료기관장이 비급여 진료 내역과 증명 수수료 항목, 기준, 금액 등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복지부 장관은 이 내용을 공개할 수 있게 돼 있다.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 내용은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다양한 비급여 진료정보를 공개해 비교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2021년 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에도 비급여 진료정보 공개가 핵심 내용 중 하나로 담겨 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하고 있는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대상 672개 항목을 올해부터 의무 보고 대상으로 정하고, 내년부터는 보고 대상을 전체 비급여 항목의 약 90%로 늘릴 방침이다. 약제(100개), 치료적 비급여(436개), 영양주사·예방접종·치과교정술 등 총 1212개 항목이 보고 대상이 될 전망이다. 복지부 측은 “비급여 현황을 파악해 국민의 알 권리와 의료기관 선택권을 더 강하게 보장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결정에서 다수였던 합헌 의견을 낸 유남석 소장 등 재판관 다섯 명은 국민의 의료선택권 보장이란 공익적 목적에 의미를 뒀다. 이들은 “보고 의무 조항은 과도한 비급여 진료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의료기관을 감독함으로써 국민의 의료선택권을 보장하고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한다”며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했다. 이어 “비급여 관리는 헌법 36조 3항에 따라 적극적으로 국민의 보건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사생활 침해” 우려 여전

합헌 결정은 났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반대 의견을 낸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환자의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들은 “진료 내역에 포함되는 병명과 수술·시술명은 사생활의 핵심을 이루는 비밀”이라며 “(환자들이) 신체적·정신적 결함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비급여 진료를 받기도 한다는 점에서 보호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비급여 진료 정보까지 보유하면 건강과 관련한 포괄적·통합적인 정보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개인정보가 국가권력의 감시·통제하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에서도 “정보 공개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국민의 알 권리와 의료선택권 보장이 법의 취지라면 공개 대상은 항목과 금액만으로 충분하다”며 “환자 성별이나 생년처럼 극히 사적인 기본정보는 물론 질병, 치료 내역, 복용약 등 민감한 진료정보까지 왜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비급여를 통제하고 국민의 진료정보를 집적하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