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덕산그룹 회장 "실패 두려움에도 가슴 설레는 성취있어 도전 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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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1세대 성공스토리
현대중공업 공채 1기 출신
54세 반도체 소재 기업 창업
5년만에 세계2위 생산업체 우뚝
'누리호' 위성항법 수신기 개발도
현대중공업 공채 1기 출신
54세 반도체 소재 기업 창업
5년만에 세계2위 생산업체 우뚝
'누리호' 위성항법 수신기 개발도
“지옥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저 위를 바라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도전 DNA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시가총액 2조원이 넘는 상장기업 3개를 일군 덕산그룹 이준호 회장(77·사진)이 <이정표 없는 길을 가다-벤처 1세대 덕산그룹 이준호 회장 성공 스토리>(도서출판 성안당)를 출간했다. 이 회장은 “숱한 인고의 시간을 안겨준 도전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보다 큰, 가슴 설레는 성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소위 성공한 벤처 1세대로서 어떻게 도전하고 성공했는지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책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미래지향적 발전인자를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는 과정’이라고 요약했다. 이 회장은 “답습해서는 성공을 못 한다는 생각에 남보다 앞서는 기술개발, 혁신을 늘 추구해왔다”고 회고했다.
현대중공업 공채 1기 출신인 그는 1999년 54세의 나이에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덕산하이메탈을 창업했다. 중화학공업이 주름잡던 당시 ‘울산 벤처 1호’ 기업이었다.
한 번에 5억원씩 4년간 20억원을 투자하며 반도체 패키지 칩과 인쇄 회로기판을 연결해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솔더볼 국산화에 나섰다. 불량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핵심 기술인력이 회사를 떠나가는 아픔을 감내하며 5년여 만에 솔더볼 생산 분야 세계 2위 생산업체로 올라섰다.
덕산네오룩스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재 분야 세계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08년 이 분야 연구개발과 설비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매출이 226억원대에 불과했던 당시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반도체 박막 형성용 증착 소재를 국산화한 덕산테코피아 등 3개 상장회사 전체 매출은 지난해 4600억원에 이른다.
2년 전에는 위성항법 전문기업인 넵코어스를 인수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위성항법 수신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그가 보유한 회사는 총 9개에 이른다.
그는 인생 역정에서 두 번의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다. 15년 전 캄보디아 천연고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투자금 150억원을 손해 봤다. 다른 한번은 휴대폰 카메라 모듈 사업을 시작해 1년여 만에 100억원 가까운 돈을 날렸다. 이 회장은 “가보지 않은 길은 절대 가지 말고, 가본 길을 가자는 교훈을 이때 얻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쉬운 길을 택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게 부동산 투기”라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부정적인 것은 택하지 않는다는 정신(정도 경영)이 있었기에, 현재의 덕산그룹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의 자세에 대해 “직원들 뒤에서 채찍질하며 겁을 주어 움직이게 하는 보스보다는 직원들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리더형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내 한계가 행여 아들의 한계가 될까 두려워 멀리서 아들을 보려 한다”며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전했다. 현재 큰아들 수훈씨는 덕산네오룩스 대표를, 둘째 수완씨는 덕산테코피아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은퇴하면 유망 스타트업 육성에 매진할 뜻을 비쳤다. 2년 전 사재 300억원을 UNIST(울산과학기술원)에 기부한 이유다. 이 회장은 “내가 겪은 길이 흙길이라면, 미래세대들의 길은 아스팔트 길이 됐으면 정말 좋겠다”며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일에 남은 여정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시가총액 2조원이 넘는 상장기업 3개를 일군 덕산그룹 이준호 회장(77·사진)이 <이정표 없는 길을 가다-벤처 1세대 덕산그룹 이준호 회장 성공 스토리>(도서출판 성안당)를 출간했다. 이 회장은 “숱한 인고의 시간을 안겨준 도전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보다 큰, 가슴 설레는 성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소위 성공한 벤처 1세대로서 어떻게 도전하고 성공했는지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책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미래지향적 발전인자를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는 과정’이라고 요약했다. 이 회장은 “답습해서는 성공을 못 한다는 생각에 남보다 앞서는 기술개발, 혁신을 늘 추구해왔다”고 회고했다.
현대중공업 공채 1기 출신인 그는 1999년 54세의 나이에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덕산하이메탈을 창업했다. 중화학공업이 주름잡던 당시 ‘울산 벤처 1호’ 기업이었다.
한 번에 5억원씩 4년간 20억원을 투자하며 반도체 패키지 칩과 인쇄 회로기판을 연결해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솔더볼 국산화에 나섰다. 불량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핵심 기술인력이 회사를 떠나가는 아픔을 감내하며 5년여 만에 솔더볼 생산 분야 세계 2위 생산업체로 올라섰다.
덕산네오룩스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재 분야 세계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08년 이 분야 연구개발과 설비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매출이 226억원대에 불과했던 당시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반도체 박막 형성용 증착 소재를 국산화한 덕산테코피아 등 3개 상장회사 전체 매출은 지난해 4600억원에 이른다.
2년 전에는 위성항법 전문기업인 넵코어스를 인수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위성항법 수신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그가 보유한 회사는 총 9개에 이른다.
그는 인생 역정에서 두 번의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다. 15년 전 캄보디아 천연고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투자금 150억원을 손해 봤다. 다른 한번은 휴대폰 카메라 모듈 사업을 시작해 1년여 만에 100억원 가까운 돈을 날렸다. 이 회장은 “가보지 않은 길은 절대 가지 말고, 가본 길을 가자는 교훈을 이때 얻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쉬운 길을 택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게 부동산 투기”라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부정적인 것은 택하지 않는다는 정신(정도 경영)이 있었기에, 현재의 덕산그룹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의 자세에 대해 “직원들 뒤에서 채찍질하며 겁을 주어 움직이게 하는 보스보다는 직원들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리더형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내 한계가 행여 아들의 한계가 될까 두려워 멀리서 아들을 보려 한다”며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전했다. 현재 큰아들 수훈씨는 덕산네오룩스 대표를, 둘째 수완씨는 덕산테코피아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은퇴하면 유망 스타트업 육성에 매진할 뜻을 비쳤다. 2년 전 사재 300억원을 UNIST(울산과학기술원)에 기부한 이유다. 이 회장은 “내가 겪은 길이 흙길이라면, 미래세대들의 길은 아스팔트 길이 됐으면 정말 좋겠다”며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일에 남은 여정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