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로2가 아모레퍼시픽 본사 5층에 설치된 레오 빌라리얼의 ‘인피니트 블룸’(2017). 가운데가 뻥 뚫린 건물의 천장에 설치돼 빌딩 밖에서도 누구나 감상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서울 한강로2가 아모레퍼시픽 본사 5층에 설치된 레오 빌라리얼의 ‘인피니트 블룸’(2017). 가운데가 뻥 뚫린 건물의 천장에 설치돼 빌딩 밖에서도 누구나 감상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해가 어둑어둑 지기 시작하는 저녁 6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에서는 날마다 빛의 축제가 시작된다. 2만2000여 개의 발광다이오드(LED) 픽셀이 한마음으로 펼쳐내는 향연이다. 픽셀들이 만든 거대한 원은 차츰 작아지고 다시 커지기를 반복한다.

지난 5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가로 35m, 세로 20m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빛에 시선을 빼앗겼다. 농구장 1.6개 크기의 초대형 전광판은 ‘용산의 랜드마크’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설치된 예술작품이다.

작품의 이름은 ‘인피니트 블룸’(Infinite Bloom, 2017). 세계적 디지털 아티스트인 레오 빌라리얼(56·사진)의 작품이다. 그는 물의 흐름 등 자연의 움직임을 빛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베이브리지를 관광명소로 떠오르게 한 것도, 영국 런던 템스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완성한 것도 빌라리얼이다.

아모레퍼시픽 직원만 들어갈 수 있는 본사 5층 야외정원에 설치됐지만 누구나 볼 수 있다. 동굴처럼 앞뒤가 뚫려 있는 공간의 천장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신사옥으로 쓸 건물을 지으면서 세운 원칙에 들어맞는 모습이다. 서 회장은 건물이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인피니트 블룸의 LED는 매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빛을 쏘아댄다. 2만여 개의 LED 조명이 빚어내는 원 모양은 어떨 때는 에너지를 응축하는 듯 작아지고 어떨 땐 부질없이 흩어진다. 빛을 통해 작가가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빌라리얼은 ‘자연의 생명과 죽음’이라고 했다. 자연의 생성부터 소멸까지의 과정을 추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인피니트 블룸은 수년간의 고민 끝에 탄생했다. 빌라리얼은 2017년 건물이 완공되기 훨씬 전부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풍경’을 넘어서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서울 사람들의 일상에 작품을 녹여낼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강점인 ‘빛’에서 답을 찾아냈다.

그는 이 작품을 ‘디지털 캠프파이어’라고 부른다. 캠프파이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것처럼, 빛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캠프파이어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게 하자는 의도다. 캠프파이어 불꽃이 시시각각 변하듯, 이 작품도 2시간 동안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실제 자연의 생명처럼 끊임없이 변화한다.

작품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은 어디일까. 아모레퍼시픽 측은 ‘건물 파크 게이트 맞은편의 한강로동 주민센터 방면’을 꼽는다. 이곳에서 보면 빛의 움직임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오는 5월 용산공원이 개방되면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캠프파이어를 보면서 잠시나마 근심 걱정을 잊고, 따뜻한 에너지를 받길 바란 ‘빛의 작가’의 뜻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