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던 글로벌 제약사발(發) 기업 인수합병(M&A)이 실제로는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거시경제의 불확실성 등으로 자금난을 겪는 신약벤처가 늘면서 몸값이 뚝 떨어졌지만, 글로벌 제약사도 M&A에 몸을 사렸다.

글로벌 헬스케어 정보업체인 아이큐비아는 지난 3일(미국 시간) '세계 R&D 트렌드 2022(Global Trends in R&D 2022)'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M&A 거래는 총 483건으로 2021년 615건 대비 21.5% 감소했다.

대신 신약벤처의 후보물질을 공동연구하는 방식의 계약이 소폭 증가했다. 한 번에 큰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M&A 보다, 상대적으로 소액을 단계별로 집행하는 기술도입(LI) 위주로 협력 계약이 진행된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행보가 보수적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투자업계 전문가는 “글로벌 제약사 또한 대규모 인력 감축을 진행하고 있어, 인수합병은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불확실성 등으로 대형 지출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대비 투자자금 감소

지난해 미국 머크(MSD) 등 미국 소재 글로벌 제약사를 포함한 미국 바이오·제약 기업의 투자액은 421억달러로 2021년과 비교해 39% 감소했다. 아이큐비아는 전년대비 절대적인 투자액이 감소한 것은 맞지만, 3년 전인 2019년(273억달러)에 비해서는 25% 이상 증가한 규모라고 했다.

이전까지 미국 기업을 위주로 진행되던 공동개발과 기술수출(LI) 계약 지형도도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과 비교해 한국 기업의 계약 건수는 251건에서 490건으로 95.2% 증가했다. 중국 또한 같은 기간 33% 늘어 지난해 387건의 계약이 이뤄졌다. 미국과 관계없이 자국내에서 진행된 계약건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중국과 한국내 신약 벤처의 투자가 증가하고 기술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계약 건수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과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는 동안 미국과 유럽, 일본 기업의 계약 건수는 감소했다. 전체 제약 관련 계약 건 수 중 미국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62%에서 57%로 줄어들었다. 유럽 기업의 계약 건수 또한 9%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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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뎌진 임상연구 속도…그래도 뜨거운 항암제 R&D

아이큐비아는 지난해 기준 임상 1상부터 신약허가신청(NDA) 단계에 이르는 연구개발(R&D) 후보물질(파이프라인) 수는 6147개로 집계했다. 후보물질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8.3%(연평균성장률)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 2021년과 지난해만 따로 떼어내면 연평균성장률이 2%에 그쳤다. 유동성이 위축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후보물질의 개발과 진입 속도가 전반적으로 더뎌진 것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R&D가 진행된 분야는 종양학이었다. 2331개 후보물질(38%)이 임상 단계에 있었다. 종양학 분야 후보물질은 지난 5년 동안 연평균성장률 10.5%로 증가해왔다.

아이큐비아는 글로벌 제약사 중 종양학 관련 파이프라인 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아스트라제네카와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미국 머크(MSD), 화이자 등을 꼽았다. 이어 로슈와 노바티스, 존슨앤존슨, 암젠이 바짝 뒤를 쫓는다고 평가했다. 개발 중인 초기 단계 물질이 많은 곳으론 애브비를 지목했다.

종양학에 이어 임상 진입 후보물질이 가장 많은 연구분야는 신경학이었다. 아이큐비아는 알츠하이머 치매(127개)과 파킨슨병(96개) 후보물질이 임상 단계에 있으며, 이어 우울증 등 기타 정신 건강 질환 치료를 위한 후보물질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 막바지에 다다른 제약사로는 카사바사이언스와 아나벡스라이프사이언스를 꼽았다. 이어 뉴로크린바이오사이언스와 아카디아파마슈티컬스 또한 신경학 및 중추신경계(CNS) 장애 분야에서 유력한 후보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했다.

종양학과 신경학에 이어 제약사들이 매진 중인 분야로는 희귀질환이 꼽혔다. 아이큐비아는 후보물질 중 약 30%가 암을 제외한 희귀질환을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기업이 진행 중인 임상 후보물질의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기업의 임상 후보물질 비율이 46%였으며, 중국은 20%였다. 5년 전 중국 기업 후보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5% 내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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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바꾼 임상 지형도…우울증· 희귀질환 뜬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환자모집 등에 어려움을 겪으며 지연되거나 주춤거렸던 임상시험은 다시 예전 속도를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와 관련이 없는 임상시험 수는 2021년 대비 지난해 들어 1% 감소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본격적인 유행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과 비교했을 때 8% 이상 더 높은 숫자라고 아이큐비아는 평가했다.

항암 후보물질 임상 개수는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주로 희귀암에 집중됐다. 우울증 관련 임상이 대폭 증가한 점도 주목할 만한 점으로 꼽혔다. 지난 5년간 우울증 임상시험은 35% 증가했으며 2020년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보급 이후 mRNA 기반 후보물질 개발은 감염병 예방 외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RNA를 이용한 암백신 후보물질은 5개로, 2017년 대비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IQVIA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신규 진입하는 신약 임상시험은 상대적으로 적은 환자로 수행할 수 있고 혁신신약(breakthrough therapy) 지정을 노릴 수 있는 질환(주로 희귀질환) 위주로 진행됐다”고 총평했다.
바이오 기업 싸졌지만 M&A '뚝'…글로벌 제약사도 몸사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 사이트 <한경 BIO Insight>에 2023년 3월 6일 16시 17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