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구매력을 나타내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0년 만에 대만에 추월당했다. 한국은 지난해 1인당 실질 GNI가 7.7% 급감해 3만2661달러로 추락한 반면 대만은 3.4% 감소에 그치며 3만3565달러로 선방했다. 두 나라 모두 국민소득이 줄어든 것은 글로벌 달러 강세 현상에 따라 원화와 대만달러화가 동반 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소득 역전 가능성이 작년부터 회자됐지만 막상 눈앞의 현실이 되고 보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다수의 한국 대기업이 초일류로 발돋움한 반면 중소기업 위주인 대만은 중국의 하청기지화로 자생력을 상실하는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앞서 달리는 모습을 확인하고 보니 걱정과 아쉬움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커진다.

5년 전인 2017년만 해도 한국의 GNI는 3만1734달러로 대만(2만5704달러)보다 23%나 높았다. 기업·돈·인재가 대륙으로 유출되고 ‘G2’로 부상한 중국의 공세로 고립무원이 가속화하자 대만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귀신섬’으로 자조할 정도였다. 하지만 차이잉원 정부가 ‘기술이 최고의 안보’라는 슬로건 아래 정보기술(IT) 중심의 대기업 육성으로 선회한 전략이 극적 변화를 불렀다. 중소기업 위주의 허약 체질을 벗어던진 대만의 질주는 대기업을 악마화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편견에 큰 시사점을 준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첫해인 2017년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하자 ‘30·50클럽’ 가입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재정 중독과 포퓰리즘으로 치달은 결과 2017년 3만1734달러였던 국민소득은 5년이 지났는데도 3만2661달러로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쉬면 뒤처지고 졸면 죽는 냉엄한 국제 경제질서를 일깨워준다.

GNI 추락에 대해 한국은행은 “원화 약세 때문”이라며 “4만달러 목표 달성이 머지않아 가능하다”고 낙관했다. 환율 요인이 있는 건 맞지만 그와 무관하게 소득 정체와 성장률 추락이 구조화하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귀족노조 힘자랑에 밀리고 세계 최강 규제로 치달으며 혁신을 등한시해선 ‘3만달러 함정’을 벗어나기 어렵다. 경제·사회 전반의 레벨업 없이 안주한다면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