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3월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시사한 지 하루 만에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금리 인상폭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서다. 재선 도전을 앞둔 백악관으로부터 '무언(無言)의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파월 의장은 8일(현지시간) 미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와 관련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면서 "추가 자료를 검토할 때까지 (금리 인상폭에 대한) 결정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도 "전체 경제지표가 더 빠른 긴축이 정당하다는 것을 나타낸다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며 전날 상원 은행위 청문회 때 발언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달 21~22일 FOMC 회의 때 결정될 금리 인상폭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전날 빅스텝 가능성이 대두되며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파월 의장이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문사 에버코어ISI는 "파월 의장이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메시지를 덧붙인 것은 빅스텝이 디폴트(기본값)가 아니고 베이비스텝도 함께 고려될 것이란 신호"라고 해석했다.

백악관은 파월 의장이 전날 강한 긴축 의지를 드러내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계자는 "백악관이 Fed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단지 한 달치 데이터를 봤을 뿐이기 때문에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파월 의장이 지난 1월 물가, 소비, 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강하다고 지적했으나 백악관은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해야 한다'며 금리 인상 속도조절에 힘을 실은 셈이다. 증시와 경기에 부담을 주는 금리 인상이 2024년 대선 출마 예정인 바이든 대통령에게 악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Fed는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Fed는 이날 내놓은 베이지북(경기동향 보고서)을 통해 "많은 지역에서 물가 상승세가 완화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노동시장은 여전히 일자리 수요가 많고 공급은 적은 빡빡한(tight)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베이지북은 지난달 27일까지 12개 연방준비은행 관할 지역의 경기 흐름을 평가한 것으로 이달 FOMC 회의 때 금리 결정 자료로 활용된다.

이달 금리 인상폭은 10일 발표되는 2월 비농업 부문 고용자 수가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선 지난 1월 51만7000명 보다 크게 줄어든 22만5000명 증가(블룸버그 집계치)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치를 조금이라도 웃돈다면 Fed의 빅스텝은 기정사실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비농업 신규 고용자 수가 30만 명을 넘는 것만으로 빅스텝이 추진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날 뉴욕증시는 혼조세로 마감했다. 다우지수(-0.18%)를 제외하고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0.14%, 0.4% 상승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