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백자의 백미로다…말간 얼굴 군자들 예 다 모였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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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은 유혹
리움미술관 조선백자전
시대를 넘은 유혹
리움미술관 조선백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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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나는 별들 속에 있어, 내가 불을 지펴 밤을 빛내는 걸 지켜봐….”
전 세계를 사로잡은 방탄소년단(BTS)의 히트곡 ‘다이너마이트’는 첫 소절부터 강력한 흡인력을 자랑한다. 가장 매력적인 하이라이트 멜로디를 전진 배치한 방식으로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듣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압도적인 기선 제압이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의 백자-군자지향’전(展)도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전략을 썼다. 전시장의 초입을 아예 ‘절정’이라고 선언해버렸다. 전시 1부의 이름이 ‘절정, 조선백자’다. 관객들은 시작부터 조선 백자들의 ‘슈퍼 스타’와 만나게 된다. 오로지 백자만 비춰주는 어둠의 공간에서다. 수십여 개 순백의 백자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떠 있는 듯 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광 책임연구원은 “고미술도 얼마든지 화려한 자태를 뽐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리움미술관이 전시한 백자 42점 가운데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작품만 31점이다. 조선 전기 청화백자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백자청화 매죽문 호’(국보), 순백으로 빛나는 ‘백자 개호’(국보), 자유분방한 멋이 일품인 ‘백자철화 운죽문 호’(보물), 풍만하고 여유로운 모양에 달 표면 같은 얼룩이 더해진 ‘백자 달항아리’(국보) 등 최상의 명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Now or Never) 전시’라는 미술관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시는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리움미술관 백자 전시를 다녀왔다는 인증샷이 넘쳐난다. 대부분 ‘백자의 별들’ 속에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전시 초입부터 백자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역대 최고, 전대미문’의 백자전을 구석구석 다녀봤다. 리움미술관 연구원들이 ‘백자청화 인물문병’에 춘향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부터 도자기 전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까지 살펴봤다. 옛날 도자기는 현대 기술로 똑같이 만들기 어렵다는 말이 사실인지도 확인했다.화려한 자기부터 고아한 순백자까지…명품 도자기 납시오
전시는 1부 ‘조선백자, 절정’으로 관람객들의 기선을 제압한 뒤 2부 ‘청화백자’로 이어진다. 값비싼 청색 안료를 아낌없이 사용한 최고급 백자들로, 우아한 격조가 일품이다. 3부 ‘철화·동화백자’에서는 친근하고 개성 넘치는 백자들을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 탓에 저렴한 안료를 썼지만, 이 덕분에 중앙에만 머물던 백자가 지방으로 퍼져나가며 다양한 매력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4부 ‘순백자’에서는 조선이 추구했던 미학이 응축된 고아한 도자기를 만날 수 있다. 전시 순서에 따라 주요 작품들을 살폈다.
▷백자청화 망우대명 초중문 잔받침(16세기, 보물)-조선의 멋이 그대로
아무리 근심이 깊은 선비라도 이 잔받침에 올린 술잔을 받으면 빙그레 웃었을 것이다. 잔받침 위에 올려져 있는 술잔을 드는 순간 ‘근심을 잊는 받침(忘憂臺)’이라는 글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머 감각과 멋, 스스럼없는 필치로 그려낸 벌과 꽃,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찍은 테두리의 점과 여백의 미 등 당시 조선의 미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백자 반합(15세기, 보물)-담백함과 엄정함
조선 왕실의 의례에 쓰는 그릇은 금속으로 만드는 게 원칙이었지만, 질 좋은 금속이 부족하면 백자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래도 모양은 금속으로 만든 것과 똑같아야 했다. 이 유물의 뚜껑 가장자리가 도톰한 것도 금속 그릇 특유의 가장자리 모양을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 왕실 백자는 이처럼 담백하면서도 엄정한 격조를 품고 있다. ▷색회 모란동백문 팔각호(17세기)-오사카에서 건너온 백자
일본에서 ‘자기 문화’를 꽃피운 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장인들이다. 이들은 중국의 채색 기술을 백자에 접목해 일본 특유의 화사한 ‘아라타 자기’를 창조해냈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서 빌려온 이 작품은 아라타 자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겉면을 각지게 깎은 백자 위 붉은색 모란과 동백이 화려한 느낌을 자아낸다. ▷백자청화동채 금강산형 연적(19세기)-백자의 변신은 무죄
조선 도공들도 일본의 ‘아라타 자기’의 영향을 받아 채색 자기를 만드는 등 여러 방향으로 변화를 꾀했다. 이 작품이 우리가 아는 백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화려하고 참신한 것도 외국의 영향을 받아서다. 다만 이런 채색 도자기가 많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주 고객’인 조선 양반들 취향에는 희고 깔끔한 백자가 맞았기 때문이다. ▷백자철화 매화문 편병(17세기)-조선의 꺾이지 않는 마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조선은 가난해졌다. 도자기를 빚을 때도 비싼 수입산 청색 안료를 쓸 수 없어 철 성분을 섞어 만든 흑색 안료를 사용했다. 하지만 때로 예술은 결핍에서 꽃핀다. 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른 봄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를 수수한 듯하면서도 강렬한 철화 안료로 그려낸 명작이다. 매화는 과감하게 병의 어깨를 타고 넘어가 뒷면까지 이어진다. ▷백자철화 호록문 호(17세기 후반)-지방에서 만든 익살스러운 철화백자
호랑이를 그린 철화백자 중 현존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오사카에서 빌려온 이 작품은 귀엽고 익살스러운 호랑이의 모습이 담긴 귀중한 철화백자다. 뒤로 돌아가면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는 사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이 단순한데도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나는 사슴의 다급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성수영/이선아 기자, 사진=이솔 기자 syoung@hankyung.com
전 세계를 사로잡은 방탄소년단(BTS)의 히트곡 ‘다이너마이트’는 첫 소절부터 강력한 흡인력을 자랑한다. 가장 매력적인 하이라이트 멜로디를 전진 배치한 방식으로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듣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압도적인 기선 제압이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의 백자-군자지향’전(展)도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전략을 썼다. 전시장의 초입을 아예 ‘절정’이라고 선언해버렸다. 전시 1부의 이름이 ‘절정, 조선백자’다. 관객들은 시작부터 조선 백자들의 ‘슈퍼 스타’와 만나게 된다. 오로지 백자만 비춰주는 어둠의 공간에서다. 수십여 개 순백의 백자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떠 있는 듯 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광 책임연구원은 “고미술도 얼마든지 화려한 자태를 뽐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리움미술관이 전시한 백자 42점 가운데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작품만 31점이다. 조선 전기 청화백자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백자청화 매죽문 호’(국보), 순백으로 빛나는 ‘백자 개호’(국보), 자유분방한 멋이 일품인 ‘백자철화 운죽문 호’(보물), 풍만하고 여유로운 모양에 달 표면 같은 얼룩이 더해진 ‘백자 달항아리’(국보) 등 최상의 명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Now or Never) 전시’라는 미술관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시는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리움미술관 백자 전시를 다녀왔다는 인증샷이 넘쳐난다. 대부분 ‘백자의 별들’ 속에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전시 초입부터 백자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역대 최고, 전대미문’의 백자전을 구석구석 다녀봤다. 리움미술관 연구원들이 ‘백자청화 인물문병’에 춘향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부터 도자기 전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까지 살펴봤다. 옛날 도자기는 현대 기술로 똑같이 만들기 어렵다는 말이 사실인지도 확인했다.
화려한 자기부터 고아한 순백자까지…명품 도자기 납시오
관람 팁·주요 작품 6가지 소개
전시는 1부 ‘조선백자, 절정’으로 관람객들의 기선을 제압한 뒤 2부 ‘청화백자’로 이어진다. 값비싼 청색 안료를 아낌없이 사용한 최고급 백자들로, 우아한 격조가 일품이다. 3부 ‘철화·동화백자’에서는 친근하고 개성 넘치는 백자들을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 탓에 저렴한 안료를 썼지만, 이 덕분에 중앙에만 머물던 백자가 지방으로 퍼져나가며 다양한 매력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4부 ‘순백자’에서는 조선이 추구했던 미학이 응축된 고아한 도자기를 만날 수 있다. 전시 순서에 따라 주요 작품들을 살폈다.
▷백자청화 망우대명 초중문 잔받침(16세기, 보물)-조선의 멋이 그대로아무리 근심이 깊은 선비라도 이 잔받침에 올린 술잔을 받으면 빙그레 웃었을 것이다. 잔받침 위에 올려져 있는 술잔을 드는 순간 ‘근심을 잊는 받침(忘憂臺)’이라는 글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머 감각과 멋, 스스럼없는 필치로 그려낸 벌과 꽃,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찍은 테두리의 점과 여백의 미 등 당시 조선의 미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백자 반합(15세기, 보물)-담백함과 엄정함
조선 왕실의 의례에 쓰는 그릇은 금속으로 만드는 게 원칙이었지만, 질 좋은 금속이 부족하면 백자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래도 모양은 금속으로 만든 것과 똑같아야 했다. 이 유물의 뚜껑 가장자리가 도톰한 것도 금속 그릇 특유의 가장자리 모양을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 왕실 백자는 이처럼 담백하면서도 엄정한 격조를 품고 있다. ▷색회 모란동백문 팔각호(17세기)-오사카에서 건너온 백자
일본에서 ‘자기 문화’를 꽃피운 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장인들이다. 이들은 중국의 채색 기술을 백자에 접목해 일본 특유의 화사한 ‘아라타 자기’를 창조해냈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서 빌려온 이 작품은 아라타 자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겉면을 각지게 깎은 백자 위 붉은색 모란과 동백이 화려한 느낌을 자아낸다. ▷백자청화동채 금강산형 연적(19세기)-백자의 변신은 무죄
조선 도공들도 일본의 ‘아라타 자기’의 영향을 받아 채색 자기를 만드는 등 여러 방향으로 변화를 꾀했다. 이 작품이 우리가 아는 백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화려하고 참신한 것도 외국의 영향을 받아서다. 다만 이런 채색 도자기가 많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주 고객’인 조선 양반들 취향에는 희고 깔끔한 백자가 맞았기 때문이다. ▷백자철화 매화문 편병(17세기)-조선의 꺾이지 않는 마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조선은 가난해졌다. 도자기를 빚을 때도 비싼 수입산 청색 안료를 쓸 수 없어 철 성분을 섞어 만든 흑색 안료를 사용했다. 하지만 때로 예술은 결핍에서 꽃핀다. 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른 봄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를 수수한 듯하면서도 강렬한 철화 안료로 그려낸 명작이다. 매화는 과감하게 병의 어깨를 타고 넘어가 뒷면까지 이어진다. ▷백자철화 호록문 호(17세기 후반)-지방에서 만든 익살스러운 철화백자
호랑이를 그린 철화백자 중 현존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오사카에서 빌려온 이 작품은 귀엽고 익살스러운 호랑이의 모습이 담긴 귀중한 철화백자다. 뒤로 돌아가면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는 사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이 단순한데도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나는 사슴의 다급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성수영/이선아 기자, 사진=이솔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