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상승분 반납한 은행주…'관치 리스크'에 미국발 뱅크런 우려까지
연초 ‘반짝 랠리’를 펼친 은행주 주가가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대출 금리 인하와 충당금 적립을 압박하면서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된 탓이다. 미국 은행주들이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우려에 폭락하자 국내 은행주에 대한 매도세도 거세지는 모습이다.

10일 오후 2시 현재 KB금융은 1.68% 내린 4만9850원에 거래중이다. 신한지주(-1.24%), 하나금융지주(-0.58%), 우리금융지주(-2.59%) 등 4대 금융지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4대 금융지주 주가는 연초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작년 말 수준으로 다시 돌아갔다. KB금융은 지난 1월 16일 6만원까지 상승했지만 이날 4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연초 은행주를 담던 외국인들도 매도세도 전환했다. 외국인은 지난달 초 이후 지난 9일까지 KB금융과 신한지주를 각각 2393억원, 960억원 순매도했다.

은행주는 올 초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주주행동 개시 이후 주가가 급등했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친화정책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지난해 금리 상승에 힘입어 주요 은행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도 주가 상승세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이 연일 ‘은행 때리기’에 나서면서 주가가 하락 전환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은행이 대출 금리를 어느 정도 낮출 여력이 있다"고 재차 압박을 가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1분기 실적 발표 시기까지 상당 기간이 남아 있는 데다 금융당국 규제 이외에는 별다른 이슈도 없는 상황”이라며 “당분간 은행주는 규제 우려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은행(SVB)발 미국 은행주 폭락도 악재로 작용했다. SVB파이낸셜그룹 주가는 9일(현지시간) 하루 만에 60.41% 급락했다. 이 회사가 예금 인출에 대응하기 위해 채권 자산을 매각한 결과 18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고 밝힌 영향이다. JP모간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미국 4대 은행주 주가도 각각 4~6% 하락 마감했다.

경기 둔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대출 감소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2월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전월 대비 286억원 감소했다. 주택담보대출이 전월 대비 감소한 것은 2014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대출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9% 수준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증가율은 서서히 둔화되고 있다”며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의 자금 수요 위축과 회사채 시장 정상화 영향으로 향후에도 기업대출 증가 폭 축소가 예상된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선 은행주의 가격 부담이 줄었다는 점에서 장기투자 관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4대 금융지주의 올해 기대 배당수익률은 6.4~10.5%로 배당 매력도 높아졌다.

SVB 사태가 국내 은행주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VB는 예대율(예수금 대비 대출금 비율)이 43%로 대출보다 채권을 더 많이 보유한 회사“라며 ”국내 은행과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국내 은행에 비슷한 이벤트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