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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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모친과 여동생들이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하자”며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선대회장 별세 후 상속 정리가 끝난 지 5년여 만이다. LG가(家)에서 재산이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것은 1947년 창업 후 처음이다. LG 측은 “합의에 따라 5년 전 적법하게 완료된 상속”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LG 지분 재분배 요구

10일 LG, 법조계 등에 따르면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배우자인 김영식씨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장녀), 구연수 씨(차녀)는 지난달 28일 구 회장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권이 참칭 상속권자로 인해 침해된 경우 상속권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침해의 회복을 위해 갖게 되는 청구권이다. 참칭 상속권자는 법률상 상속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속재산의 전부나 일부를 점유하는 사람을 뜻한다. “상속 자격이 없는 구 회장이 상속 재산을 점유했다”는 게 김씨 등의 주장이다. 김씨 등은 구 회장이 상속받은 ㈜LG 지분에 대한 권리를 주장, 재분배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LG 측은 이날 “재산 분할을 요구하며 LG 전통과 경영권 흔드는 건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공식 입장문을 냈다. LG는 “선대회장이 별세하고 5년이 되어가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며 “구 회장은 그동안 가족과 가문의 화합을 위해 최대한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상속 완료 5년 지났는데…

김씨는 선대회장과 사이에서 장녀 구연경 대표와 차녀 구연수 씨를 낳았다. 구 회장은 선대회장의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이지만, 2004년 선대회장의 양자로 호적에 올랐다. 경영권은 아들이 물려받아야 한다는 LG의 유교적 전통에 따른 것이다.

LG 측은 선대회장 별세 후 5개월간 협의를 통해 2018년 11월 법적으로 완료한 상속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LG 관계자는 “제척기간(3년)이 지났고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선대회장이 남긴 재산은 ㈜LG 지분 11.28%를 비롯해 2조원대다. 당시 ㈜LG 주식 등 경영권 관련 재산은 구광모 회장이 상속하고, 세 모녀는 ㈜LG 주식 일부와 선대회장의 개인 재산인 금융투자상품, 부동산, 미술품 등을 포함해 5000억원 규모의 유산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LG 측은 “4세대를 걸쳐 내려온 LG 경영권 승계 원칙은 집안을 대표하고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 경영권 관련 재산을, 그 외 가족들은 소정의 비율로 개인 재산을 받는 것이었다”며 “이번 상속도 이 원칙에 따라 협의를 거쳐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경영권 관련 재산인 ㈜LG 지분 모두 구 회장이 상속받아야 하지만, 구 회장이 세 모녀의 요청을 받아들여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 씨가 각각 ㈜LG 지분 2.01%(당시 약 3300억원), 0.51%(당시 약 830억원)를 상속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선대회장이 살던 한남동 단독주택은 지분 40%를 김씨가, 나머지 60%를 장녀, 차녀가 절반씩 나눴다.

구 회장은 선대회장이 보유했던 ㈜LG 지분 11.28% 중 8.76%를 상속받아 최대 주주에 올랐다. 현재 구 회장의 ㈜LG의 지분율은 15.95%다. 구 회장은 상속받은 ㈜LG 지분에 대한 상속세 약 7200억원을 5년 동안 6회에 걸쳐 나눠 내고 있다. 현재까지 5회 납부했고, 올해 말 마지막 상속세를 납부할 예정이다.

○‘다툼 없던 LG’ 전통 흔들리나

LG는 사업 초기부터 허(許)씨 가문과 동업했고 후손들도 많아서 창업회장부터 명예회장, 선대회장에 이르기까지 “집안 내, 회사 내에서 재산을 두고 다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가풍이 있었다. 창업 후 75년간 여러 차례 상속과 계열분리 과정에서 경영권이나 재산 분쟁이 한 차례도 없던 점은 LG의 자랑거리로 꼽히곤 했다.

LG 회장은 대주주들이 합의하고 추대한 뒤 이사회에서 확정하는 구조다. LG 측은 “㈜LG 최대 주주인 구광모 회장이 보유한 ㈜LG 지분은 LG가를 대표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고,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씨 등은 별도 유증(유언에 따른 증여)이 없다면 상속인 4명이 각각 1.5대 1대 1대 1 비율로 상속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LG 지분 11.28% 중 3.75%는 김씨, 세 자녀에겐 각 2.51%씩 줬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조계는 상속인 간의 합의가 완전하게 마무리됐는지 여부가 이번 소송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법무법인 존재의 윤지상 변호사는 “원고 측이 유류분 반환이 아니라 상속회복 청구소송을 제기한 건 상속 합의와 관련해 흠결을 문제 삼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라며 “분할 협의에 대한 내용이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속 분쟁 전문가인 법무법인 트리니티의 김상훈 대표변호사는 “상속 협의에 대한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지 않다면 승소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원고와 피고 측의 답변서 제출 등을 감안하면 6개월 후에 본격적인 법정 공방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LG는 전날보다 6.58% 오른 8만59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소송 내용이 알려진 뒤 주가는 8만90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정지은/배성수/오현아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