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6조9000억달러(약 9100조원) 규모의 2024회계연도(올 10월~내년 9월) 정부 예산안을 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국방 예산과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고, 대신 고소득층과 대기업 증세로 재원을 마련해 적자를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평시 기준으로 국방예산은 사상 최대로 제시했고, 부자 증세 규모는 향후 10년 동안 5조5000억달러(약 7300조원)로 전망했다. 다만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어 정부안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中 견제 위해 국방예산 늘려

바이든, 결국 부자 주머니 털어 재정적자 메운다
바이든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2024 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국방예산이다. 전년보다 3.2% 증가한 8420억달러(약 1111조원)로 역대 최대 규모다.

백악관은 핵전력 강화를 뜻하는 ‘핵 억지력 유지’에 377억달러를 책정했다. 중국을 견제할 방안도 공개했다. 국방 부문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주둔을 늘리고 마셜제도와 미크로네시아, 팔라우 등 태평양 섬과의 자유연합협정(CFA)을 갱신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다.

미 상무부는 미국의 자본과 전문 기술이 중국의 첨단 기술 투자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위해 국제무역청(ITA)에 500만달러를 배정했다.

보건 및 인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예산은 1440억달러로 전년보다 11.5% 늘렸다.

‘억만장자세’ 결국 도입

바이든 행정부는 앞으로 10년간 2조9000억달러(약 3800조원)의 연방정부 적자를 줄이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에 필요한 재원 일부는 고소득자와 기업에서 충당할 계획이다. 상위 0.01%인 미국인에게 최소 세율 25%를 부과하는 ‘억만장자 최소 소득세’가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소방관, 교사보다 세금을 덜 내는 억만장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연 소득이 40만달러(약 5억3000만원) 이상인 경우 적용되는 소득세 최고 세율은 37.0%에서 39.6%로, 메디케어 부가세율은 3.8%에서 5.0%로 올리기로 했다. 펀드매니저의 성과급과 부동산 투자자, 암호화폐 투자자 등의 세금 부담도 커진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21%로 낮아진 법인세율은 다시 28%로 오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득을 본 에너지기업의 세제 혜택은 줄어든다.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온 수익에 부과되는 세율도 10.5%에서 21%로 인상된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자와 대기업에 증세하면 향후 10년간 4조7000억달러의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고, 추가로 8000억달러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연 소득 40만달러 이하 시민에겐 세금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또 지난해 종료됐던 자녀 1명당 최고 3600달러의 세액공제도 되살리기로 했다.

그러나 증세해도 적자를 줄이는 건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사회보장지출이 급증해서다. 로이터는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인 5명 중 1명이 2030년까지 정년을 맞는다”며 “부자 증세가 실현돼도 앞으로 10년간 매년 1조달러 이상 적자가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산 편성 및 처리 권한을 가진 하원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작다는 평가다.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상향안을 놓고 정부 지출 삭감을 요구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지출 증대와 증세는 이에 정면으로 반하는 계획이라는 평가다.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은 정부 예산안을 두고 “무모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