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에서 관람객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경DB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에서 관람객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경DB
내년부터 게임회사가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려면 어떤 아이템이 얼마만큼의 확률로 나오는지 정보를 미리 공개해야 한다. 국회는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게임을 제작·배급·제공하는 업체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확률을 게임물, 홈페이지, 광고 등에 표시해야 한다. 이 의무를 어기면 정부가 시정을 명령할 수 있고, 그래도 어기면 2년 이하 징역형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까지 받을 수 있다. 1년 유예 기간을 거쳐 본격 시행된다.

내년부터 ‘뽑기 확률’ 공개 의무화

확률형 아이템이란 어떤 것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구입하는 게임 아이템을 말한다. 자동차 경주를 예로 들면 1% 확률로 초고성능 슈퍼카가, 90% 확률로 일반 차량이 나오는 식이다. 게임하는 재미를 더해준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사실상 도박과 다를 게 없어 사행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2000년대 초반 등장한 확률형 아이템은 한국 게임회사들의 핵심 수익원이다. 문제는 게임업계가 어느새 이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현질’(현금 쓰기)을 강요한다는 게임 이용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조차 힘든 수준이 됐다는 것이다. 여론의 지지를 업은 ‘확률 공개법’이 게임업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회 문턱을 통과한 배경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시장 환경과 업계 현실이 반영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PC게임 이용자의 28.4%,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18.9%가 확률형 아이템을 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평균 지출 금액은 PC가 5만원, 모바일이 3만원 선이었다. 10만원 이상 쓴 이용자 비율은 PC가 35%, 모바일이 22%로 나타났다. 업계 일각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산업 외연을 넓히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게임업계, 확률형 아이템 탈피 시도

게임회사들도 이런 논란을 의식해 새로운 수익 구조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출시됐거나 발매를 앞둔 신작 게임 가운데 확률형 아이템과 거리를 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 넥슨은 올 1월 출시한 경주 게임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에 확률형 아이템을 넣지 않았다. 그라비티의 신작 ‘라그나로크X’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로는 이례적으로 뽑기 아이템 판매를 배제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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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도는 한국 게임이 내수 시장보다 해외 시장에 집중하는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는 게임의 본질을 해치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게이머들이 과거보다 작품성과 게임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세대교체되고 있고, 게임사 경영진도 이런 변화가 필연이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