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16번째 규모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공격적인 금리인상을 버티지 못해 파산했다. 미국에서 파산한 은행으로는 역대 두 번째 규모다.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10일(현지시간)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SVB의 기존 예금은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이라는 법인을 만들어 이전하고 SVB 보유 자산도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말 기준 SVB의 총자산은 2090억 달러, 총예금은 1754억 달러다. 25만 달러의 예금보험 한도 이내 예금주들은 13일 이후 예금을 인출할 수 있고 비보험 예금주들은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FDIC가 지급하는 공채증서를 받을 수 있다.

1983년 설립된 SVB가 파산한 원인은 금리인상에 있다. SVB는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국채수익률(시장금리)이 낮아지자 채권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지난해부터 미 중앙은행(Fed)가 기준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리면서 큰 손실을 본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금리인상 여파로 주요 고객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예금이 급감하면서 SVB는 자금 마련을 위해 손실이 발생한 국채를 어쩔 수 없이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18억 달러 규모 손실을 봤다. 이러한 사실이 공표되면서 주가는 60% 이상 폭락하고 고객들의 예금 인출이 가속했다.

SVB는 22억5000만 달러 규모 증자 계획을 세웠지만 무산됐고, 재차 회사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를 기다리지 않고 SVB를 폐쇄했다. 이에 지역 은행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며 퍼스트리퍼블릭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 등은 주가가 각각 14%, 22% 급락했다.

정부 당국은 과도한 위기감을 경계하고 나섰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날 의회에 출석해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몇몇 은행이 있다. 추후 전개상황에 따라 관련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실리아 라우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도 백악관 브리핑에서 "금융 당국은 우리 은행 시스템의 회복력을 강화할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