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건서의 은퇴사용설명서] 은퇴 후 괜찮은 백수, 포백(four back) 전략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첫 번째 '불백'은 불쌍한 백수의 줄임말인데, 이러한 불백의 특징은 동창이든 친구든 누가 불러주면 나가서 밥을 같이 먹거나, 어쩌다 정말 가끔 본인이 직접 친구를 불러내서 식사 자리든 술자리든 만들어서 외로움을 달래는 가련한 백수 유형을 말한다. 두 번째 '가백'은 가정에 충실한 백수를 말하는데 가백의 특징은 주로 집에만 칩거하면서 손자, 손녀 봐주고 아내가 외출할 때 집 잘 보고 있으라고 하면 ‘잘 다녀오세요.’라고 대답하는 백수 유형이다. 이와 비슷한 ‘동백’은 일없이 동네만 어슬렁거리는 백수를 뜻한다. 세 번째 '마포 불백'은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의 줄인 말인데, 특징은 아내가 뭐라고만 하면 매번 토를 달고 다투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분리수거 날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혹시 자신을 분리수거로 내놓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되기 때문이라니 왠지 가슴이 찡하다.
그렇다면 필자는 어느 유형일까? 무언가 하고 있으니 불백은 아니고, 그렇다고 화백이나 반백 유형에도 끼지 못하지만, 시골생활을 즐기고 있는 백수이니 ‘시골 백수’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필자는 그냥 속 편하게 ‘4백(포백)’으로 부른다. 축구게임에서 수비가 4명인 경우를 포백(보통 442전술, 또는 433 전술)이라고 하듯이 ①시골에서 여유롭게 살면서, ②가끔 강의, 회의, 자문역으로 서울 나들이도 하고, ③장미산장이라는 조그만 펜션도 운영하고, ④홉시언스족을 위한 새로운 공간인 ‘심심림’을 만들고 있으니 백수이긴 한데 4가지를 하고 있어서 이름 붙인 백수 유형이다. 거기에 더하여 매주 하나씩의 칼럼을 쓰기로 했으니 5백(파이브백)으로 변할 수도 있으려나. 아무튼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농담이 있듯이 포백이든 파이브백이든 꽤나 바쁘게 사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인생에서 일이나 직업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소득(돈), 재미, 의미를 선물로 준다. 젊은 시절에는 생활의 밑천인 소득이 가장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재미있는 일이면서 소득이 크다면 금상첨화이지만, 조금 재미가 없더라도 소득만 높으면 참고 견딜 만하다. 그래서 투잡(two job)이니 쓰리잡(three job)이니 하는 용어도 유행된다. 그런데 본래의 일이나 직업에서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살거나 은퇴 후 백수로 지내다 보면 소득보다는 의미와 재미가 더 중요해진다. 소득이 좀 적더라도 의미와 재미가 크면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퇴 후에는 의미 있는 봉사활동이나 재미있는 취미생활을 벗 삼아 쓰리(3)백, 포(4)백, 파이브(5)백이 되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불백이나 마포불백은 어쩐지 처량하게 보인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