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미중 전략경쟁과 새로운 통상 질서
"중국을 포위하거나 억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같은 나라도 과거 서명했던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 7일 브리핑 때 한 이 말은 미국 정부가 대(對)중국 정책의 배경을 설명할 때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문구다.

1971년 유엔에 가입하고 2001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되는 등 전후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체제에 합류한 중국이 그에 따른 이득을 누리면서 성장한 뒤 이제는 강압적으로 그 질서를 바꾸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 밝힌 대중 경쟁의 3대 기조(투자·제휴·경쟁)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가 경제다.

대만 문제와 맞물린 미중간 군사적 분야의 경쟁은 기존 대결이 가팔라진 측면이 있으나 경제에서의 대중 정책은 완전히 차원이 달라졌다는 점에서다.

가령 미국 상무부가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포괄적인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활용해서 군사 장비를 현대화하고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에 대해 변화를 기도하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의지가 담겼다.

이처럼 경제 문제가 안보 이슈가 되면서 미국 정부에서 나온 말이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다.

대상을 불문한 자유무역이 아니라 이제는 믿을 수 있는 국가와만 거래하겠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규칙 기반 세계 수호'를 외치는 미국 역시 기존 무역 질서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압박을 받은 네덜란드와 일본이 최근 결국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또 다른 예는 미국 행정부 내에서 상무부의 전면적 부상과 무역대표부(USTR)의 존재감 약화다.

과거 USTR은 FTA 협상을 주도하면서 미국의 통상 정책을 책임졌는데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도 전통적인 통상 정책을 추구하지 않고 있다.

반면 상무부는 '누구와 어디까지 거래할지'에 대한 각종 산업 경제 정책을 통해 통상 분야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파원 시선] 미중 전략경쟁과 새로운 통상 질서
문제는 '경제 안보' 강화가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는 점이다.

한국에선 미중간 문제와 관련해 과거에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이 한때 대세적 지위를 갖고 있었으나 이 접근법은 이제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안보와 결부된 새로운 경제 질서가 형성되면서 통상 국가인 한국의 활동 공간이 제약받고 있어서다.

이런 통상 환경 변화에 대해 에드워드 알든 포린폴리시(FP) 칼럼니스트도 지난 7일 글에서 "통상에서 이제는 새로운 세상"이라면서 "미국의 통상 파트너들은 그 안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 외에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럼에도 선택이 있다면 '규칙 수립'에 참여하는 것이다.

기준을 정하고 선을 긋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이익을 보는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한국에 가장 부합하는 '새 통상 규칙 형성'을 위한 외교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차원에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논의를 주목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