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숙청으로 이룬 北 4대 세습, 그래도 계몽군주인가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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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10살 딸 김주애 4대 세습 여부 두고
"후계자 낙점" "식량난 따른 불만 무마용" 분분
국정원 "4대 혈통 세습 당위성 각인 목적"
살상무기 행사장에 가치관 미성숙 딸 동행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거대한 극장국가의 한편의 희극이자 비극
그런데도 한국서 “김정은 받들어” “계몽군주”
"후계자 낙점" "식량난 따른 불만 무마용" 분분
국정원 "4대 혈통 세습 당위성 각인 목적"
살상무기 행사장에 가치관 미성숙 딸 동행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거대한 극장국가의 한편의 희극이자 비극
그런데도 한국서 “김정은 받들어” “계몽군주”
북한 김정은이 4대 세습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그 과정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이르기까지 무자비한 피의 숙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김일성이 광복 직후 소련군을 등에 업고 북한에 들어올 때는 국내 권력 기반이 취약했다. 당시 북한에선 소련파·연안파·갑산파·국내파 등 4개 계파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권 초반에는 이들 계파들이 연합해 정권을 형성했다. 1949년 내각 수상이던 김일성은 소련의 강력한 후원 아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김일성은 확고한 1인 지배 체제 확립을 위해 6·25전쟁 뒤 단계적으로 반대파 숙청에 나서기 시작했다. 박헌영·이승엽 등 남로당 간부들을 ‘미제의 간첩’ 등 명분을 걸어 1955년 처형했다. 이들 제거에 앞장선 박창옥 내각 부수상과 허가이 등 소련파도 희생됐다. 김일성은 1958년 남아 있던 연안파·소련파·국내파까지 모조리 숙청했다. 김일성 곁에는 그의 친위부대라고 할 수 있는 갑산파와 빨치산파만 남았다. 김일성은 그마저도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을 제거하면서 1인 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김일성 3대 피비린내 나는 숙청, ‘백두혈통’ 구축
김일성은 1970년대 들어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차례차례 넘겨 주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1973년 9월 노동당 선전비서 겸 조직지도부장에 올랐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 것은 이듬해 2월이다. 김일성이 백두산을 근거지로 항일 운동을 벌였다며 북한이 김정일·김정은 등 직계에 붙여진 이른바 ‘백두 혈통’이란 개념이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다.
김정일은 백두 혈통으로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걸림돌 제거 작업을 끊임없이 해 나갔다. 후계자 경쟁자였던 삼촌 김영주를 자강도로 쫓아냈다. 이복동생 김평일의 생모이자 김정일의 계모인 김성애 세력을 도려내기 위해 광범위한 숙청 작업도 단행했다. 동유럽으로 쫓겨난 김평일은 30년 넘게 헝가리·불가리아·핀란드·폴란드·체코 등을 떠돌았다.
김정일은 1997년 ‘심화조 사건’이라는 대규모 숙청 작업을 벌였다. 간첩단 조작 방식이었다. 당시 식량난으로 굶어 죽은 사람이 200만~300만 명에 달한 ‘고난의 행군’으로 민심이 크게 흔들리자 눈길을 돌리려는 의도였다. 아버지 시대의 주요 인물들에게 간첩 누명을 씌워 2만5000여 명을 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 내부에선 당에 충성한 간부들을 간첩으로 낙인 찍는다면 어떻게 충성할 수 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김정일은 전면 재조사를 지시했다. 숙청 작업을 주도한 채문덕 사회안전부 정치국장의 공명심과 야망으로 날조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김정일은 채문덕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심화조 사건 피해자들은 복권됐다.
김정은은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총으로 처형하는 등 광기 어린 숙청을 이어 나갔다. 장성택에겐 도덕적 해이, 부정부패 등 죄목을 걸었지만 자신의 권좌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두 혈통의 유일 영도 체계에 걸림돌로 본 것이다. ‘김정일 운구 7인방’도 대부분 사라졌다. 장성택 숙청을 함께 논의한 ‘삼지연 8인방’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을 제거하고 세습 체계를 공고히 한 김정은은 열 살짜리 딸 김주애를 공식 석상에 등장시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화성 17형 발사 현장에서 김정은과 손잡고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지난달 8일 북한 건군절 행사장에서는 한가운데 앉고 양 옆에 김정은과 어머니 이설주, 뒤엔 나이 많은 장성들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김정은과 단 둘이 손잡고 레드 카펫을 밟고 귀빈석에 앉아 지휘관들의 인사를 받고 고체 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신형 무기들을 지켜봤다. 김주애는 지난 9일 김정은과 함께 서부전선 화성포병부대의 화력 훈련 현장을 찾았다. 공식 석상 8번째 등장이다.
김정은이 김주애를 공개한 의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후계자 낙점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정 센터장은 “북한 후계자론에 의하면 중요한 것은 남자·여자 여부가 아니라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자질”이라며 “김주애가 여자이지만 배짱이 있고 정치적 야심이 있으며 권력을 승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김정은으로선 김주애를 후계자로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김주애와 함께 미사일 시찰 사진을 공개한데 대해선 “김주애가 권력을 승계하게 되면 결국 핵 버튼까지 물려받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라며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주애에 대한 호칭이 ‘사랑하는 자제분’과 ‘존귀하신~’에서 ‘존경하는~’으로 바뀐 것이 후계자론에 무게를 싣는 사례라는 게 정 센터장의 분석이다. 정 센터장은 10∼20년 후 적당한 때가 되면 김주애가 후계자로 공식 지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징 조작에 불과하다는 신중론도 있다. 북한 경제가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는 게 그 근거다.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 식량난이 심각해 일부 지역에서 굶어 죽는 주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제2 고난의 행군’이란 말도 나온다. 북한 식량 수요는 연간 약 560만 톤이지만 공급량은 100만 톤 이상 부족하다. 북한에서 형편이 비교적 양호하다는 개성에서도 하루 수십 명의 아사자가 나온다고 한다. 김정은이 열 살짜리 딸을 공개 석상에 데리고 나와 부각시킨 것도 식량난에 따른 주민 불만을 무마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주애는 오빠가 등장하기 전 감초 역할, ICBM 흥행을 위한 바람잡이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아직 젊고 건강해 후계를 조기 부상할 필요가 없다는 점, 후계 지침이나 선전 동향도 없기 때문에 4대 혈통 세습의 당위성 각인 목적이 유력한 김주애 띄우기의 동기”라고 분석했다.
어린 딸을 등장시켜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핵·미사일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상’을 통해 독재 국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정상 국가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목적도 있다. 영국 왕실과 미국 대통령이 가족을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것이다. ‘미래 세대 안전 담보’는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에게 핵무기의 정당성을 알려 ‘백두 혈통’ 충성으로 유도하려는 의도라는 주장도 나온다.
열 살짜리 딸 우상화, 위대한 지도자 코스프레
그 어느쪽이든 4대 백두 혈통으로 권력을 세습하려는 의도는 명확하다. 김정은이 “혁명의 전위 부탁”, “계승 또한 위대하다”, “후손 만대를 위해”라고 한 것을 두고 4대 세습을 위한 우상화 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백두 혈통’이 북한의 유일 지도 체제라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숱한 ‘피의 숙청’을 통해 세습 왕조를 구축했으니 이를 쉽사리 놓을 리 없다.
아무리 김씨 왕조라고 하지만 가치관이 성숙되지 않은 열 살짜리 딸에게 대량 살상 무기를 보여준 것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주민들의 기초적인 생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위대한 지도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거대한 극장 국가의 희극과 비극이 교차한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김정은 받들어’하는 간첩단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에게 “계몽 군주 같다”고 한 사람도 있다. 전(前)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북한이 얼마나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고 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김일성은 확고한 1인 지배 체제 확립을 위해 6·25전쟁 뒤 단계적으로 반대파 숙청에 나서기 시작했다. 박헌영·이승엽 등 남로당 간부들을 ‘미제의 간첩’ 등 명분을 걸어 1955년 처형했다. 이들 제거에 앞장선 박창옥 내각 부수상과 허가이 등 소련파도 희생됐다. 김일성은 1958년 남아 있던 연안파·소련파·국내파까지 모조리 숙청했다. 김일성 곁에는 그의 친위부대라고 할 수 있는 갑산파와 빨치산파만 남았다. 김일성은 그마저도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을 제거하면서 1인 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김일성 3대 피비린내 나는 숙청, ‘백두혈통’ 구축
김일성은 1970년대 들어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차례차례 넘겨 주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1973년 9월 노동당 선전비서 겸 조직지도부장에 올랐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 것은 이듬해 2월이다. 김일성이 백두산을 근거지로 항일 운동을 벌였다며 북한이 김정일·김정은 등 직계에 붙여진 이른바 ‘백두 혈통’이란 개념이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다.
김정일은 백두 혈통으로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걸림돌 제거 작업을 끊임없이 해 나갔다. 후계자 경쟁자였던 삼촌 김영주를 자강도로 쫓아냈다. 이복동생 김평일의 생모이자 김정일의 계모인 김성애 세력을 도려내기 위해 광범위한 숙청 작업도 단행했다. 동유럽으로 쫓겨난 김평일은 30년 넘게 헝가리·불가리아·핀란드·폴란드·체코 등을 떠돌았다.
김정일은 1997년 ‘심화조 사건’이라는 대규모 숙청 작업을 벌였다. 간첩단 조작 방식이었다. 당시 식량난으로 굶어 죽은 사람이 200만~300만 명에 달한 ‘고난의 행군’으로 민심이 크게 흔들리자 눈길을 돌리려는 의도였다. 아버지 시대의 주요 인물들에게 간첩 누명을 씌워 2만5000여 명을 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 내부에선 당에 충성한 간부들을 간첩으로 낙인 찍는다면 어떻게 충성할 수 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김정일은 전면 재조사를 지시했다. 숙청 작업을 주도한 채문덕 사회안전부 정치국장의 공명심과 야망으로 날조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김정일은 채문덕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심화조 사건 피해자들은 복권됐다.
김정은은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총으로 처형하는 등 광기 어린 숙청을 이어 나갔다. 장성택에겐 도덕적 해이, 부정부패 등 죄목을 걸었지만 자신의 권좌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두 혈통의 유일 영도 체계에 걸림돌로 본 것이다. ‘김정일 운구 7인방’도 대부분 사라졌다. 장성택 숙청을 함께 논의한 ‘삼지연 8인방’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을 제거하고 세습 체계를 공고히 한 김정은은 열 살짜리 딸 김주애를 공식 석상에 등장시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화성 17형 발사 현장에서 김정은과 손잡고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지난달 8일 북한 건군절 행사장에서는 한가운데 앉고 양 옆에 김정은과 어머니 이설주, 뒤엔 나이 많은 장성들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김정은과 단 둘이 손잡고 레드 카펫을 밟고 귀빈석에 앉아 지휘관들의 인사를 받고 고체 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신형 무기들을 지켜봤다. 김주애는 지난 9일 김정은과 함께 서부전선 화성포병부대의 화력 훈련 현장을 찾았다. 공식 석상 8번째 등장이다.
김정은이 김주애를 공개한 의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후계자 낙점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정 센터장은 “북한 후계자론에 의하면 중요한 것은 남자·여자 여부가 아니라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자질”이라며 “김주애가 여자이지만 배짱이 있고 정치적 야심이 있으며 권력을 승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김정은으로선 김주애를 후계자로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김주애와 함께 미사일 시찰 사진을 공개한데 대해선 “김주애가 권력을 승계하게 되면 결국 핵 버튼까지 물려받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라며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주애에 대한 호칭이 ‘사랑하는 자제분’과 ‘존귀하신~’에서 ‘존경하는~’으로 바뀐 것이 후계자론에 무게를 싣는 사례라는 게 정 센터장의 분석이다. 정 센터장은 10∼20년 후 적당한 때가 되면 김주애가 후계자로 공식 지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징 조작에 불과하다는 신중론도 있다. 북한 경제가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는 게 그 근거다.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 식량난이 심각해 일부 지역에서 굶어 죽는 주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제2 고난의 행군’이란 말도 나온다. 북한 식량 수요는 연간 약 560만 톤이지만 공급량은 100만 톤 이상 부족하다. 북한에서 형편이 비교적 양호하다는 개성에서도 하루 수십 명의 아사자가 나온다고 한다. 김정은이 열 살짜리 딸을 공개 석상에 데리고 나와 부각시킨 것도 식량난에 따른 주민 불만을 무마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주애는 오빠가 등장하기 전 감초 역할, ICBM 흥행을 위한 바람잡이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아직 젊고 건강해 후계를 조기 부상할 필요가 없다는 점, 후계 지침이나 선전 동향도 없기 때문에 4대 혈통 세습의 당위성 각인 목적이 유력한 김주애 띄우기의 동기”라고 분석했다.
어린 딸을 등장시켜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핵·미사일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상’을 통해 독재 국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정상 국가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목적도 있다. 영국 왕실과 미국 대통령이 가족을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것이다. ‘미래 세대 안전 담보’는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에게 핵무기의 정당성을 알려 ‘백두 혈통’ 충성으로 유도하려는 의도라는 주장도 나온다.
열 살짜리 딸 우상화, 위대한 지도자 코스프레
그 어느쪽이든 4대 백두 혈통으로 권력을 세습하려는 의도는 명확하다. 김정은이 “혁명의 전위 부탁”, “계승 또한 위대하다”, “후손 만대를 위해”라고 한 것을 두고 4대 세습을 위한 우상화 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백두 혈통’이 북한의 유일 지도 체제라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숱한 ‘피의 숙청’을 통해 세습 왕조를 구축했으니 이를 쉽사리 놓을 리 없다.
아무리 김씨 왕조라고 하지만 가치관이 성숙되지 않은 열 살짜리 딸에게 대량 살상 무기를 보여준 것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주민들의 기초적인 생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위대한 지도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거대한 극장 국가의 희극과 비극이 교차한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김정은 받들어’하는 간첩단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에게 “계몽 군주 같다”고 한 사람도 있다. 전(前)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북한이 얼마나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고 했다.
홍영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