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주 끌어모아 1년새 덩치 두배로…WSJ "아슬아슬한 질주" 진단
연준 前 이사 "감독 당국, 급속 성장에 경계했어야"
눈뜨고 망한 SVB…'초고속 몸집 불리기'에 "당국 뭐했나" 책임론
미국 실리콘밸리 돈줄이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한순간에 파산한 것은 알고 보면 눈앞에 뻔히 도사린 위험 때문이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진단했다.

SVB는 예금주에 저금리를 주고 단기 자금을 끌어모아 장기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초고속으로 몸집을 불렸는데, 당국은 이같은 '뻔한 위험'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일 불거진 SVB 파산 사태를 두고 전직 연방준비은행 관계자와 금융계 전문가들은 당국 감독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도마 위에 올렸다.

은행 자문 회사인 '페더럴 파이낸셜 애널리틱스'(Federal Financial Analytics)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감독에 관련한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SVB는 최근 눈 깜짝할 새 눈덩이처럼 자산 규모를 키웠다.

특히 예금 규모를 1년 사이에 거의 두배로 끌어모으면서 2021년 말 총자산이 2천110억 달러(279조원)에 달했다.

이는 1년 전 1천160억 달러에서 급속도로 불어난 것으로, 미 은행 순위로 16위(2022년 말 기준)까지 치솟았다.

이같은 아슬아슬한 질주에서 SVB는 전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고 WSJ는 짚었다.

예금주에게서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한 단기 자금을 끌어모은 뒤 상대적으로 장기로 묶여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는데, 이 사이에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손실이 가중됐다는 것이다.

결국 신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겁에 질린 예금주들이 단 이틀 사이에 예금을 빼간 게 지난 10일 파산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됐다.

문제는 "이토록 빠르게 덩치를 키우면서 이자율 위험을 그만큼 높게 떠안았는데도 감독 당국은 어떻게 이를 놔둘 수 있었느냐"는 점이라고 WSJ는 꼬집었다.

2017년 연방준비은행 이사에서 퇴임한 대니얼 타룰로는 "급속 성장은 항시적으로 감독 당국에 최소한의 경계 신호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SVB 예금 중 거의 90%가 당국의 보험 적용에서 제외된다는 점도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을 부추긴 요인일 수 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SVB의 총예금은 1천754억 달러(232조원)로, 이중 FDIC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 규모는 86%에 달하는 1천515억 달러(200조4천억원)로 추정된다.

2007∼2021년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에릭 로즌그렌은 "2천억 규모의 은행이 유동성 때문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면서 "그들의 포트폴리오에서 벤처 자금이 과도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알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SVB는 대형 은행보다 '덜 번거로운' 유동성 규정을 갖고 있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TD 카우언의 한 애널리스트는 은행의 파산 조짐이 있을 때 감독 당국은 유동성 규정을 새로 살펴봐야 한다며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한편 SVB 파산에 암호화폐 업계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1일 전했다.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은 최근 규제 당국이 암호화폐를 겨냥해 대대적으로 단속에 나서면서 SVB 파산의 씨앗을 뿌렸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업체인 '앱토스 랩스' 관계자는 "지금은 한숨을 돌려야 할 때"라면서 법정 화폐 중심의 중앙 통제식 은행 체계에서 대안 금융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