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뿐 아니라 글로벌 벤처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다. 이 은행이 미국 국채 매각 손실을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밀려드는 예금 인출 요구를 견디지 못했다. 총자산 2000억달러가 넘는 대형 은행의 갑작스러운 부도로 스타트업 업계에 돈줄이 마르고 제2의 금융위기가 닥치는 게 아니냐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지난 10일 SVB를 폐쇄한 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선임했다. 유동성 부족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FDIC는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이라는 새 법인으로 기존 예금을 이전한 뒤 자산 매각을 서두르기로 했다.

SVB의 파산은 충격적이다. 작년 말 기준 총자산 2090억달러로 미국 내 16위인 데다 인도 영국 중국 독일 등 11개국에서 영업한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이다. SVB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문을 닫은 워싱턴뮤추얼은행(4340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파산 은행으로 기록됐다.

이번 SVB 파산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급격한 긴축에 따른 결과다. 자금 경색에 빠진 기술 기업이 경쟁적으로 예금 인출을 요구하자 주로 국채로 보유한 자산을 팔아 대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년 초 연 1%대였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이달 초 연 4%를 돌파했다. 국채에서 손실을 보고 주가가 폭락하자 뱅크런이 발생했고 이는 은행 도산으로 이어졌다. 시장에서는 스타트업 줄도산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보험 한도(예금자당 25만달러)를 초과하는 SVB 예금이 1515억달러 규모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SVB 사태로 국민연금도 손실을 볼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SVB 모기업인 SVB파이낸셜그룹 지분 10만795주(지난해 말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8일 267달러 선이던 SVB파이낸셜그룹 주가는 파산 소식이 전해진 9일 106.04달러로 폭락했다. 이후로는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