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사태로 미뤄본 USDC…무엇이 문제였을까 [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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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훈종의 알쓸₿잡 <68>
3월 13일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주 3회 아침 발행하는 코알라를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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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SC 대학에서 금융학을 가르치고 있는 닉 바티아는 그의 저서 '레이어드 머니(Layered Money)'를 통해 현대 경제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화폐가 어떻게 겹겹이 쌓여 있는지를 설명하는 레이어드 머니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화폐가 단순히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종이 돈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속성과 특성을 가진 화폐가 상호 연관되어 구성된 복잡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이 화폐 피라미드 안에서 각 계층마다 존재하는 서로 다른 속성의 화폐를 ‘계층 화폐’라고 불렀다.
화폐 피라미드의 맨 위에는 수세기 동안 화폐의 한 형태로 사용되어 온 금과 같은 실물 자산이 있다. 이러한 실물 자산은 정부나 중앙 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가치 저장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화폐 구매력 하락에 대비해 본인 재산을 지키려는 투자자에게 언제나 인기가 높다.
실물 자산 바로 아래 계층에는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통화가 있다. 이 두번째-계층 화폐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발행하긴 했지만 그 가치는 중앙은행이 첫번째-계층 화폐인 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음에 의해 보증되었다. 두번째-계층 화폐는 일종의 도매 형태로 시중 은행들에게만 발행되었으며, 시중 은행들은 다시 대출을 통해 우리같은 일반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소매 화폐를 발행했다. 이를 세번째-계층 화폐라 부른다.
금과 같은 궁극의 안전자산을 매개로 하여 가치가 보증된 화폐를 발행하던 기본적인 화폐 피라미드의 구조는 1971년, 미국 정부가 금태환을 중지한 그 유명한 ‘닉슨 쇼크’이후로 뒤바뀌게 된다. 지금 화폐 피라미드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것은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 즉 미국채다. 때문에 두번째-계층 화폐는 이를 발행한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믿음과 신용이 전적으로 가치를 뒷받침한다. 세번째-계층 화폐인 소매 화폐를 상위 계층의 화폐로 교환해 올라가면 미국이라는 국가의 신용을 기반으로 발행된 국채만 손에 남게된다. 국채는 결국 국가가 만기에 채권자에게 상환해야할 부채다. 현대의 화폐 피라미드가 부채로 쌓아올린 탑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계층 화폐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조건은 위기가 찾아왔을때 언제든 더 안전한 상위 계층의 화폐로 태환하여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만 유지된다면 피라미드는 네번째, 다섯번째-계층 화폐로 계속해서 크기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실버게이트 은행(Silvergate Bank)에 이어 실리콘 밸리 은행(SVB)까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세번째-계층 화폐를 제공하던 은행들이 뱅크런에 의해 문을 닫는 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이로인한 연쇄 작용으로 미국 달러화 가격과 1:1로 연동되어 가치가 유지되던 USDC와 DAI 같은 스테이블 코인도 가치 연동이 깨지는 ‘디페깅’현상으로 사태가 전염되는 중이다. 지금은 다시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지만, 한때 두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은 거의 $0.88 까지 낙폭을 확대하기도 했다.
그동안 스테이블 코인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디지털 세상에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사용되는 새로운 형태의 화폐로 받아들여졌다. 법정 화폐처럼 은행이 발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정 화폐와 같은 가치를 유지하는 암호화폐이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곳에까지 침투하여 금융 포용성을 넓힐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문제가 불거진 USDC와 DAI가 어떻게 작동하는 스테이블 코인인지 알아보고, 이들이 맞닥뜨린 문제의 원인을 화폐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살펴도록 하자.
USDC의 경우 이러한 색깔이 더욱 짙다. 달러화와 1:1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 달러화 현금, 또는 현금 등가물로 100% 가치를 뒷받침한다. 이는 사실상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발행하는 달러화 파생 상품과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미국 경제와 은행 시스템의 운명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실리콘 밸리 은행(SVB)에 USDC의 달러화 준비금이 들어있었다는 소식은 스테이블 코인이 탈중앙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화폐가 아니라 그저 또 한 종류의 달러 파생상품이라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USDC 발행사인 서클은 약 400억 달러의 준비금 중 33억 달러를 SVB에 보관했는데, 은행이 문을 닫으며 이제 더 이상 이를 인출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유통되는 USDC 코인은 400억 달러만큼 있지만 실제 달러화 준비금은 367억 달러로 줄어든 것이다. USDC 코인의 가치가 달러화에 의해 100% 보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들은 탈출 러시를 감행했고 USDC 가격은 0.88 달러까지 순식간에 떨어졌다. 이 사건은 USDC가 수많은 달러 파생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전통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DAI는 어떨까. 달러 준비금이 없고 알고리즘으로 운영되어 훨씬 탈중앙화되어 있는듯 보이지만, 사실 여전히 법정 화폐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 SVB 뱅크런 사태로 인해 USDC 디페깅이 심화되자 DAI 가격까지 덩달아 디페깅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유를 알고보니 메이커다오 재단이 보유하고 있던 이더(ETH) 담보 자산의 3분의 1, 약 16억 달러가 USDC로 교환되어 코인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기관 전용 투자 상품에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겨우 1.5% 정도되는 연이자를 받기 위해서 담보를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한 격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위험한 투자를 진행하기로 한 결정이 커뮤니티에서 투표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 투표는 메이커다오의 투자자이기도 한 코인베이스의 제안으로 2022년 9월 진행되었으며 75%가 넘는 높은 찬성률로 통과되었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를 과연 탈중앙화 되어있다고 봐야할까. 코인베이스가 자신이 투자한 토큰 커뮤니티에 직접 제안을 넣어 자신이 발행한 USDC 코인에 투자하게 만들고 손해를 입힌 꼴이니 별로 탈중앙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투자자들도 이런 문제를 눈치챘는지 메이커다오의 거버넌스 토큰인 MKR은 3월 6일 오후 기준 926.20달러에 거래되며 전일 대비 3%, 지난주에 비해서는 16% 하락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USDC나 DAI와 같은 코인들을 이름만 탈중앙화 되었다는 의미로 ‘DINO(Decentralized in Name Only)’라 부른다. 둘 다 그 가치는 여전히 미국 달러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으며, 미국 달러의 가치는 미국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 달려있다.
계층 화폐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보면 USDC와 DAI는 새로운 피라미드의 기축통화가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달러화 피라미드의 가장 하위 계층에 속하는 파생상품이라 보는것이 합당하다. 블록체인에서 발행되고 탈중앙화 금융 애플리케이션(Dapp)을 통해 사용된다고해서 다 탈중앙 암호화폐가 아니다.
미국채는 전통적으로 현대 미국 달러 피라미드에서 최상위 계층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제 그 운명이 다 해가는 모습이다. 실제로 국채의 무한 증식을 이용한 화폐 발행 시스템은 지난 50년 동안 인플레이션, 천문학적 부채 누적, 중앙은행의 이자율 조작 등으로 금융 시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현재 미국 정부는 국가 부채가 28조 달러(약 3경원)을 넘어서 심각한 부채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과연 미국 정부가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빚을 내어 기존의 빚을 갚는 행위를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중이다. 특히 2020년 이후에는 코로나 19 팬데믹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모두 저금리와 양적 완화만을 외치고 있다. 생산 활동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아니라 새로 빚을 내어 갚아야 하는 채권이라면 아무리 국채라 하더라도 점점 매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트코인은 국채와 기존 달러 피라미드와 아무 상관이 없는 독특한 통화 정책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탈중앙화된 형태의 화폐는 인플레이션, 정부의 인위적 자본통제, 과도한 부채 축적 등 기존 달러 시스템이 지니고 있던 단점으로부터 자유롭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단기적 시각으로 봤을때 변동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제한된 공급량과 매력적인 가치 저장 수단의 특성 덕분에 장기적인 가치가 법정 화폐, 금, 주식, 부동산 등 모든 자산과 비교하여 우상향 하는 중이다. 이러한 자산은 화폐 피라미드의 정점에 놓였을때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자산 규모가 276조 원에 달하던 SVB 은행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예금을 미처 인출하지 못한 미국인들이 은행 앞에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을 보며, 세계는 그 어느때보다도 미국 정부나 중앙 기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형태의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만약 앞으로도 계속 중앙은행의 위기통제 능력이 도마위에 올라 국채가 신용을 잃는다면, 화폐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궁극의 안전성을 제공할 새로운 자산으로서 비트코인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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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SC 대학에서 금융학을 가르치고 있는 닉 바티아는 그의 저서 '레이어드 머니(Layered Money)'를 통해 현대 경제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화폐가 어떻게 겹겹이 쌓여 있는지를 설명하는 레이어드 머니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화폐가 단순히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종이 돈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속성과 특성을 가진 화폐가 상호 연관되어 구성된 복잡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이 화폐 피라미드 안에서 각 계층마다 존재하는 서로 다른 속성의 화폐를 ‘계층 화폐’라고 불렀다.
화폐 피라미드의 맨 위에는 수세기 동안 화폐의 한 형태로 사용되어 온 금과 같은 실물 자산이 있다. 이러한 실물 자산은 정부나 중앙 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가치 저장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화폐 구매력 하락에 대비해 본인 재산을 지키려는 투자자에게 언제나 인기가 높다.
실물 자산 바로 아래 계층에는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통화가 있다. 이 두번째-계층 화폐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발행하긴 했지만 그 가치는 중앙은행이 첫번째-계층 화폐인 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음에 의해 보증되었다. 두번째-계층 화폐는 일종의 도매 형태로 시중 은행들에게만 발행되었으며, 시중 은행들은 다시 대출을 통해 우리같은 일반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소매 화폐를 발행했다. 이를 세번째-계층 화폐라 부른다.
금과 같은 궁극의 안전자산을 매개로 하여 가치가 보증된 화폐를 발행하던 기본적인 화폐 피라미드의 구조는 1971년, 미국 정부가 금태환을 중지한 그 유명한 ‘닉슨 쇼크’이후로 뒤바뀌게 된다. 지금 화폐 피라미드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것은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 즉 미국채다. 때문에 두번째-계층 화폐는 이를 발행한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믿음과 신용이 전적으로 가치를 뒷받침한다. 세번째-계층 화폐인 소매 화폐를 상위 계층의 화폐로 교환해 올라가면 미국이라는 국가의 신용을 기반으로 발행된 국채만 손에 남게된다. 국채는 결국 국가가 만기에 채권자에게 상환해야할 부채다. 현대의 화폐 피라미드가 부채로 쌓아올린 탑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계층 화폐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조건은 위기가 찾아왔을때 언제든 더 안전한 상위 계층의 화폐로 태환하여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만 유지된다면 피라미드는 네번째, 다섯번째-계층 화폐로 계속해서 크기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실버게이트 은행(Silvergate Bank)에 이어 실리콘 밸리 은행(SVB)까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세번째-계층 화폐를 제공하던 은행들이 뱅크런에 의해 문을 닫는 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이로인한 연쇄 작용으로 미국 달러화 가격과 1:1로 연동되어 가치가 유지되던 USDC와 DAI 같은 스테이블 코인도 가치 연동이 깨지는 ‘디페깅’현상으로 사태가 전염되는 중이다. 지금은 다시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지만, 한때 두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은 거의 $0.88 까지 낙폭을 확대하기도 했다.
그동안 스테이블 코인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디지털 세상에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사용되는 새로운 형태의 화폐로 받아들여졌다. 법정 화폐처럼 은행이 발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정 화폐와 같은 가치를 유지하는 암호화폐이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곳에까지 침투하여 금융 포용성을 넓힐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문제가 불거진 USDC와 DAI가 어떻게 작동하는 스테이블 코인인지 알아보고, 이들이 맞닥뜨린 문제의 원인을 화폐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살펴도록 하자.
스테이블 코인과 피라미드
스테이블 코인은 그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를 말한다. 주로 미국 달러화나 유로화와 같은 선진국 법정 화폐에 가치가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 본 칼럼에서 주제로 다루고있는 USDC와 DAI는 미국 달러화와 가격이 연동되어있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 둘은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USDC:
USDC는 USD Coin의 줄임말로 미국 기업인 서클과 코인베이스 거래소가 합작하여 2018년에 출시한 토큰이다. USDC가 달러화 가격을 추종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바로 실제 달러화를 은행 계좌에 예치하고 그와 1:1로 코인을 발행하는 것이다. 은행에 예치된 달러화 자산은 감독 기관으로부터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으며 회계 장부의 투명성을 관리한다. 마치 과거 중앙은행이 발행한 법정 화폐의 가치가 은행 금고에 들어있는 금에 의해 유지 되었듯이, USDC 코인은 해당 금액만큼의 미국 달러로 언제든지 태환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치를 유지한다.
USDC는 다른 암호화폐와 대비해 가격 변동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주로 암호화폐 거래소나 탈중앙 금융 애플리케이션(DeFi)간에 가치를 전송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다른 스테이블 코인들과 비교해서도 가장 수준높은 규제 준수와 높은 투명성으로 인해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DAI:USDC와 DAI는 분산원장에서 발행되고 유통되는 암호화폐인 것은 맞지만, 사실 진정한 의미의 탈중앙화된 화폐는 아니다. 거래가 기록되는 원장만 탈중앙화 되어 있을 뿐, 화폐의 가치는 여전히 법정 화폐와 실물 경제 시스템의 운명에 강하게 결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DAI 역시 USDC와 마찬가지로 미국 달러에 1:1 비율로 고정된 탈중앙화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운영되는 탈중앙화 자율 조직(DAO)인 메이커다오가 만들었다. USDC와 달리 DAI는 미국 달러 준비금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고, 대신 담보부 부채 포지션(CDP) 시스템이라 불리는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가 유지된다.
CDP는 사용자가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기본 통화인 이더(ETH)를 일정량 동결하고 그 대가로 DAI를 생성할 수 있는 스마트 컨트랙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이더 담보의 가치를 실시간 모니터링하여 초과 담보를 유지해주기 때문에 다이의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구조다.
DAI 토큰의 발행과 소각은 탈중앙화된 거버넌스 시스템을 통해 메이커다오 커뮤니티에서 관리한다. 즉, 커뮤니티가 DAI 스테이블 코인의 안정성과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버넌스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와 법정 화폐 준비금이 없다는 특성 때문에 DAI는 USDC보다 더 탈중앙화된 형태의 스테이블 코인으로 간주된다.
USDC의 경우 이러한 색깔이 더욱 짙다. 달러화와 1:1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 달러화 현금, 또는 현금 등가물로 100% 가치를 뒷받침한다. 이는 사실상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발행하는 달러화 파생 상품과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미국 경제와 은행 시스템의 운명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실리콘 밸리 은행(SVB)에 USDC의 달러화 준비금이 들어있었다는 소식은 스테이블 코인이 탈중앙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화폐가 아니라 그저 또 한 종류의 달러 파생상품이라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USDC 발행사인 서클은 약 400억 달러의 준비금 중 33억 달러를 SVB에 보관했는데, 은행이 문을 닫으며 이제 더 이상 이를 인출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유통되는 USDC 코인은 400억 달러만큼 있지만 실제 달러화 준비금은 367억 달러로 줄어든 것이다. USDC 코인의 가치가 달러화에 의해 100% 보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들은 탈출 러시를 감행했고 USDC 가격은 0.88 달러까지 순식간에 떨어졌다. 이 사건은 USDC가 수많은 달러 파생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전통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DAI는 어떨까. 달러 준비금이 없고 알고리즘으로 운영되어 훨씬 탈중앙화되어 있는듯 보이지만, 사실 여전히 법정 화폐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 SVB 뱅크런 사태로 인해 USDC 디페깅이 심화되자 DAI 가격까지 덩달아 디페깅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유를 알고보니 메이커다오 재단이 보유하고 있던 이더(ETH) 담보 자산의 3분의 1, 약 16억 달러가 USDC로 교환되어 코인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기관 전용 투자 상품에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겨우 1.5% 정도되는 연이자를 받기 위해서 담보를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한 격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위험한 투자를 진행하기로 한 결정이 커뮤니티에서 투표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 투표는 메이커다오의 투자자이기도 한 코인베이스의 제안으로 2022년 9월 진행되었으며 75%가 넘는 높은 찬성률로 통과되었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를 과연 탈중앙화 되어있다고 봐야할까. 코인베이스가 자신이 투자한 토큰 커뮤니티에 직접 제안을 넣어 자신이 발행한 USDC 코인에 투자하게 만들고 손해를 입힌 꼴이니 별로 탈중앙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투자자들도 이런 문제를 눈치챘는지 메이커다오의 거버넌스 토큰인 MKR은 3월 6일 오후 기준 926.20달러에 거래되며 전일 대비 3%, 지난주에 비해서는 16% 하락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USDC나 DAI와 같은 코인들을 이름만 탈중앙화 되었다는 의미로 ‘DINO(Decentralized in Name Only)’라 부른다. 둘 다 그 가치는 여전히 미국 달러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으며, 미국 달러의 가치는 미국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 달려있다.
계층 화폐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보면 USDC와 DAI는 새로운 피라미드의 기축통화가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달러화 피라미드의 가장 하위 계층에 속하는 파생상품이라 보는것이 합당하다. 블록체인에서 발행되고 탈중앙화 금융 애플리케이션(Dapp)을 통해 사용된다고해서 다 탈중앙 암호화폐가 아니다.
비트코인은 유일한 탈중앙 암호화폐다
법정 화폐 준비금으로 가치가 뒷받침되지 않고 정부나 중앙 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진정한 탈중앙 암호화폐는 오직 비트코인 뿐이다. 비트코인은 앞서 소개한 스테이블 코인들과는 다르게 특정 화폐나 그것이 속한 금융 시스템과 운명이 결부되어 있지 않다. 비트코인의 공급량은 2,100만 개로 제한되어 있어 극도의 투명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전적으로 시장의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독립성과 탈중앙성은 비트코인을 달러 피라미드의 하위계층 어딘가에 존재하는 파생상품이 아니라 미국채를 대체하여 첫 번째-계층 화폐를 대체하는 궁극의 안전자산의 위치에 오르게 만들 것이다.미국채는 전통적으로 현대 미국 달러 피라미드에서 최상위 계층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제 그 운명이 다 해가는 모습이다. 실제로 국채의 무한 증식을 이용한 화폐 발행 시스템은 지난 50년 동안 인플레이션, 천문학적 부채 누적, 중앙은행의 이자율 조작 등으로 금융 시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현재 미국 정부는 국가 부채가 28조 달러(약 3경원)을 넘어서 심각한 부채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과연 미국 정부가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빚을 내어 기존의 빚을 갚는 행위를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중이다. 특히 2020년 이후에는 코로나 19 팬데믹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모두 저금리와 양적 완화만을 외치고 있다. 생산 활동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아니라 새로 빚을 내어 갚아야 하는 채권이라면 아무리 국채라 하더라도 점점 매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트코인은 국채와 기존 달러 피라미드와 아무 상관이 없는 독특한 통화 정책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탈중앙화된 형태의 화폐는 인플레이션, 정부의 인위적 자본통제, 과도한 부채 축적 등 기존 달러 시스템이 지니고 있던 단점으로부터 자유롭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단기적 시각으로 봤을때 변동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제한된 공급량과 매력적인 가치 저장 수단의 특성 덕분에 장기적인 가치가 법정 화폐, 금, 주식, 부동산 등 모든 자산과 비교하여 우상향 하는 중이다. 이러한 자산은 화폐 피라미드의 정점에 놓였을때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자산 규모가 276조 원에 달하던 SVB 은행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예금을 미처 인출하지 못한 미국인들이 은행 앞에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을 보며, 세계는 그 어느때보다도 미국 정부나 중앙 기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형태의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만약 앞으로도 계속 중앙은행의 위기통제 능력이 도마위에 올라 국채가 신용을 잃는다면, 화폐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궁극의 안전성을 제공할 새로운 자산으로서 비트코인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백훈종 샌드뱅크 COO는…▶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자 "웹3.0 사용설명서"의 저자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