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상자산) 기부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 기부를 사칭한 피싱, 가짜 기부 사이트까지 생겨날 정도입니다. 가상자산 기부는 전 세계 어디서나 신속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고 익명성이 보장돼 각광받았습니다. 중간 자선단체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 원하는 기부처로 직접 기부가 가능해 불필요한 중간 수수료가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고요. (거래 시 발생하는 가스비 정도는 어쩔 수 없겠지만요.)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기부 문화가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합니다. 크립토 기업 및 커뮤니티, 개인 기부자를 중심으로 가상자산 기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존 자선단체와 협력을 하기도 합니다. 가상자산 기부 외에도 블록체인,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크립토 기술을 도입해 투명한 기부 방식을 개발하는 서비스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어 한경 긱스(Geeks)가 취재했습니다.

가상자산 기부. 게티이미지뱅크
가상자산 기부. 게티이미지뱅크


분산원장, 탈중앙화자율조직(DAO), 대체불가능토큰(NFT)과 같은 크립토(Crypto)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기부 트렌드가 자리를 잡고 있다. 기부자와 수혜자가 직접 연결될 수 있고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히면서다.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가상자산을 기부받기 시작했다. 사진=우크라이나 정부 공식 트위터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가상자산을 기부받기 시작했다. 사진=우크라이나 정부 공식 트위터
가상자산 기부는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아나 전쟁 이후 본격화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신속한 자금조달을 위해 작년 3월 비트코인, 이더리움,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을 기부금으로 받기 시작했다. 유엔난민기구(UNCHR)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한 블록체인 솔루션을 같은 해 12월 선보이기도 했다.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후 암호화폐로 7000만달러(약 911억 4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조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강진으로 극심한 피해를 본 튀르키예에도 전 세계에서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가상자산 기부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에 따라 다양한 가상자산 기부 사례가 잇따르는 추세다.

NFT로 기부인증, 메타버스에서 현황 파악

크립토 업계에 따르면 웹3.0 커뮤니티 블링빌과 NFT 프로젝트 버그시티는 지난달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들은 6일간 현금과 이더리움을 합쳐 420만원가량의 기부금을 모금해 튀르키예 현지 한인 구호단체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버그시티와 블링빌이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기부 프로젝트을 열었다. 커뮤니티는 기부자가 참여를 인증하며 그린 하트 그림을 모아 NFT를 제작했다. 블링빌 제공
버그시티와 블링빌이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기부 프로젝트을 열었다. 커뮤니티는 기부자가 참여를 인증하며 그린 하트 그림을 모아 NFT를 제작했다. 블링빌 제공
이 프로젝트의 기부 방법은 크게 현금, 가상자산, 하트 그림 등 3가지다. 현금이나 가상자산을 각각 기부 계좌, 기부 지갑으로 송금하고 이를 인증하는 하트 그림을 보내는 방식이다. 기부에 뜻을 모은 사람들이 보내온 하트 그림을 모아 NFT로 제작해 참여자들에게 다시 나눠준다. 기부를 기념하거나 인증하기 위함이다.

기부자가 기부할 때마다 버그시티와 블링빌 DAO에서 총 0.005이더리움(약 1만원)이 추가로 기부된다. 기부하지 않아도 하트 그림을 그려서 보내면 그림당 1만원을 기부하게 되는 셈이다. 개인이 기부하면 단체나 조직에서 기부금액과 일정 비율을 매칭해 지원하는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이반 버그시티 대표는 "홀더들은 커뮤니티에 모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투표를 통해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며 "홀더들이 자발적으로 튀르키예 지원안을 퀘스트로 만들어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블링빌 커뮤니티 대표로 활동 중인 미셸은 "기부금은 버그시티 구성원이 활동 중인 튀르키예 현지 NGO인 '딥앤와이드'에 전달되며 메르신 한국문화원 등과 함께 현지 이재민들의 구호를 위해 쓰일 것"이라며 "기부의 모든 방식과 과정을 투표로 정하기 때문에 최대한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기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링빌은 김미경 대표가 운영하는 교육플랫폼 MKYU에서 시작된 웹3.0 커뮤니티다. 작년 8월쯤 만들어져 현재는 MKYU와 별개로 운영 중이다. 버그시티는 '트윗 투 언'(Twit to Earn)으로 시작한 스타트업 버그홀의 NFT 프로젝트다. 홀더들은 커뮤니티 활성화에 기여하면 기프티콘, 게임 머니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받는다. 이 회사는 작년 10월 KB인베스트먼트, 카카오벤처스, 필로소피아벤처스 등으로부터16억원 규모의 시드(초기)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도 최근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이용자와 함께하는 모금 활동을 진행했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지난 2일 튀르키예 지진 피해 구호 활동 지원을 위해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업비트 캠페인 역시 매칭 그랜트 방식이다. 이용자가 기부를 위한 전자지갑 주소로 비트코인을 기부하면, 해당 금액만큼 일정 한도 내에서 업비트가 추가로 기부한다. 이용자는 업비트 ‘바로 출금’ 기능을 이용해 입금 주소로 비트코인(BTC)을 출금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으며 기부에 동참한 이용자는 이를 증명하는 NFT를 받는다. 튀르키예 구호 모금 현황은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 ‘세컨블록'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걸으면서 기부해요"

기존 자선단체에서도 블록체인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제구호개발단체 월드비전은 블록체인 기업 퍼블리시와 협력해 ‘디지털자산 후원’ 페이지를 열었다. 국내 NGO단체 중에서는 최초로 가상자산을 후원금으로 받고, 기부자에게 NFT로 후원 증서를 발행한다.

월드비전은 가상자산을 원화로 환전해 기부하는 방식이다. 후원자가 본인의 전자지갑 속 가상자산을 월드비전의 전자지갑으로 이체하면 이체된 후원금을 거래소를 통해 원화로 환전한다. 이후 월드비전 원화 통장으로 입금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선단체, NGO는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 시장 침체 우려 등을 이유로 가상자산을 직접 기부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며 "대부분 후원자로부터 모금을 받을 때 가상자산으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부 플랫폼 체리가 운영중인 체리워크는 걸음에 따라 포인트를 받는다. 이중 일정 비율을 기부할 수 있다.
기부 플랫폼 체리가 운영중인 체리워크는 걸음에 따라 포인트를 받는다. 이중 일정 비율을 기부할 수 있다.
국내 최초 블록체인 기부 플랫폼 '체리'(CHERRY)도 주목받고 있다. 체리는 IT 기업 이포넷에서 분사한 기업으로 '블록체인을 통한 투명한 기부'를 내세워 지난 13일 기준 1600여 개의 캠페인으로 약 78억원의 기부금을 모금했다.

기부금 모금부터 사용까지 모든 과정을 추적하는 '마이크로 트래킹' 기능과 지난해 국제표준화기구(ISO) 블록체인 표준 대표 사례로 등재되면서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을 활용한 기부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가 5만원 이상 기부를 하면 솔라나 체인 NFT를 증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체리워크 기능을 통해 걸어서 포인트를 얻고, 원하는 비율만큼 기부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워크 투 언을 넘어서 '워크 두 도네이트'가 가능한 셈이다. 여기에 NFT 기능을 도입해 무브 투 언 플랫폼 스테픈처럼 리워드를 받고 NFT를 구현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체리 관계자는 "NFT뿐만 아니라 충전식 카드를 통해 기부자가 기부 결제를 하면 실시간으로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볼 수 있는 기능도 개발하고 있다"며 "향후 가상자산 직접 기부도 염두에 두고 기부금 투명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비트기브
사진=비트기브
해외에서도 크립토 자선사업 플랫폼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미국 블록체인 기부 플랫폼 '기빙블록', '앤기븐' '펀드레이즈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비영리단체 및 자선단체의 가상자산 기부 수령을 효율적으로 돕는 플랫폼이다. 기부자와 교회, 교육기관, 자선단체 등을 연결한다.

2013년에 설립된 비트기브(BitGive) 재단은 최초의 블록체인 비영리 단체로 전 세계 NGO와 협력하며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재단이 운영 중인 플랫폼 '기브 트랙'을 통해 비영리 단체는 원하는 프로젝트를 게시할 수 있고 플랫폼은 기부자에게 재무 보고와 프로젝트 결과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는 2018년 설립한 블록체인 기반 공익재단 ‘BCF(블록체인 자산 재단)’를 통해 가상자산 기부를 통한 자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