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日 성의 있는 조치' 연연 말고 전략적 외교 펼쳐야
윤석열 대통령이 16∼17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2019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오사카를 찾은 이후 약 4년 만이다.

국제회의가 아닌 한일 정상 간 만남을 위한 방일은 2011년 이후 약 12년 만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이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한일 관계를 보면 일본을 방문하게 된 것 자체가 (양국 관계의) 큰 진전이자 성과"라고 평가한 이유일 것이다.

거리상으로나 민주주의 가치 공유 면에서나 일본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하지만 지난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우리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 등으로 양국 관계가 곤두박질치는 사이 국제 정세는 급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경쟁 가속화, 세계 공급망 위기, 북한의 전례 없는 미사일 도발 등은 우리 정부에게 전략적 판단을 하도록 압박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6일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한 이유일 것이다.

정부의 제삼자 변제 방식은 '완패'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얻어낸 것은 보이지 않고 양보만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 '외교 문제의 사법적 자제' 틀을 벗어난 대법원판결이 시초가 됐다고는 하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한 해법 동의 과정이 생략된 채 지나치게 서둘러 발표한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협상은 종료됐고 피해자와 반발 여론을 설득하는 작업은 현 정부의 몫으로 남았다.

여론이 들끓고 야당의 공세가 불 보듯 뻔한 데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결단한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는 두 나라 공통의 이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매우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 데에 그 답이 있다.

북의 도발과 동북아 안보 위기 속에서 정부가 택한 전략적 선택이 한미 동맹이라면 이를 후방에서 뒷받침하는 미일 동맹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조속한 한일 관계 개선이었던 셈이다.

윤 대통령 방일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사죄라는 단어를 분명히 사용하고, 미래 기금에 일본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가 때맞춰 나와 준다면 악화한 한국 여론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자꾸 강요하는 것은 당초의 대승적 양보의 취지에 어긋난다.

양보는 대가를 바라선 안 된다.

양보받은 사람에게 마음의 빚을 지우는 것이다.

25년 전 일본 총리가 문서로 약속했던 사죄와 반성조차 입으로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현 일본 리더십의 속 좁은 내부 지향적 태도는 그들이 감당해야 할 후과가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방일 기간 오로지 전략적으로 움직이길 바란다.

우리 정부는 한일 관계를 과거가 아닌 미래, 양자 관계가 아닌 글로벌 국가전략의 포괄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음을 일본의 내각과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