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1910~1937)은 초기에 일본어로 시를 썼다. ‘건축무한육면각체’ 같은 연작시가 그런 경우다. 이 시들은 1950년대 들어 한국어로 번역됐는데, 오역이 많았다.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다. ‘이상의 시는 어렵다’ ‘해독이 불가능하다’ 같은 반응이 나오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이상의 일본어 시 28편을 새롭게 번역해 <영원한 가설>(읻다)이란 시집으로 펴낸 김동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상의 일본어 시 원문을 보면 문법적으로 이상한 부분은 있어도 해석이 안 되는 시는 없다”며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상과 정지용 연구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이 분야 전문가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은 책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일반적인 이상 시집에서 볼 수 있는 각주나 해설이 전혀 없다. 일본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을 각 장 왼쪽과 오른쪽에 나란히 실었을 뿐이다. 학술서가 아닌 한 권의 시집으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책에 실린 28편의 시는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 일하던 이상이 1931~1932년 조선건축회 기관지인 ‘조선과 건축’에 연재한 시다. 재야 문학평론가인 임종국 씨가 1956년 <이상문학전집>을 펴내며 처음 한국말로 옮겼다. 전문가가 아니었던 탓에 오역과 의역이 많았다. 많은 학자가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잘못된 번역은 계속 살아남았다.

<영원한 가설>은 이 문제를 바로잡는 시도다. 임씨가 ‘基督의貨幣는보기숭할지경으로貧弱하고’로 번역한 문장을 김 교수는 ‘그리스도의 화폐는 볼품없을 정도로 빈약하여’라고 했다. 띄어쓰기도 추가했다. 김 교수는 “띄어쓰기는 1933년 한글맞춤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며 “당대에 띄어쓰기를 안 한 다른 시인들의 시는 나중에 이를 고쳐 책으로 나왔는데, 유독 이상만 띄어쓰기 안 한 부분을 그대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