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자산관리의 대주주인 김만배 씨가 과거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총장은 대장동 일당의 로비 대상을 일컫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김수남 측근’ 변호사와 대책 논의

15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검찰의 김씨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대장동 비리 의혹이 불거져 검찰이 수사 준비를 하던 2021년 9월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김 전 총장을 만나 대응 방법을 논의했다. 김씨는 이 자리에서 김 전 총장으로부터 그가 속한 대형로펌의 검사 출신 변호사 A씨를 소개받았다. 김 전 총장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검찰총장으로 재직했다.

그 후 A씨를 비롯해 그가 소속된 로펌의 변호인단이 김씨의 조력자로 합류했다.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인 병채씨가 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고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대장동 일당의 대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제출한 시기였다. 김씨가 이 무렵 A씨의 도움을 받아가며 화천대유 임원인 이한성 씨(공동대표)·최우향 씨(이사)와 함께 범죄수익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김씨가 2021년 9월 29일 전화 통화로 최씨에게 검찰의 추징 보전에 따른 법인 계좌 동결에 대비해 화천대유로부터 500억원을 배당받는 방안을 A씨와 논의하라고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A씨는 “검찰에 재산을 유출하지 않는 대신 추징 보전을 청구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말했지만, 김씨는 500억원을 배당받아 경기 수원시에 있는 농지를 사들였다.

김씨는 구속 상태에서도 A씨를 통해 측근에게 범죄수익 은닉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2021년 11월 22일 A씨를 접견해 이씨와 최씨 등에게 “검찰의 추징 보전에 대비하라”는 말을 전달해달라고 했다. 며칠 후 A씨를 다시 접견했을 땐 “법인 계좌 등에서 인출해 숨겨둔 수표 등을 이용해 오목천동 옆 주유소를 80억~85억원 정도에 매수하라”는 지시 전달도 요구했다.

정치권엔 “정진상 노출, 걱정 마라”

김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존재가 드러날 가능성을 두고 정치권과 논의할 때도 A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자신의 배임 혐의를 다룬 공소사실엔 등장하지 않은 정 전 실장이 정 회계사 녹취록에 언급되자 2021년 11월~2022년 1월 A씨를 통해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정치권 인사에게 전달했다. 이 정치권 인사로부터는 “캠프에서 잘 챙기니 걱정하지 마라. 정 실장은 절대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받았다.

김씨가 A씨를 통해 정 전 실장 수사 상황을 파악한 정황도 공소장에 적혔다. 김씨는 지난해 1월 13~14일 정 전 실장이 검찰 조사를 받자, 17일 재판받던 도중 A씨에게 수사 상황을 알려달라고도 요청했다. A씨는 1월 19일 김씨를 접견하면서 “정 전 실장이 김씨와 1년에 20차례 이상 통화한 사실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알려줬다. 김씨는 당시 접견에서 정 회계사의 녹취록이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서도 “20대 대선 전까지는 (녹취록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김씨 범죄를 도왔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배당을 받으면 회사 채무를 갚아라, 재판 중 성과급 지급은 배임 소지가 있으니 신중하라는 식으로 의견을 제시했을 뿐 범죄수익 은닉과 관련한 행위는 한 적 없다”며 “접견 때 노트에 적은 몇 단어를 근거로 검찰이 대화 내용을 추측해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적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실장과 관련한 공소장 내용에 관해선 “당시 상식적으로 짐작되는 상황을 대화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김진성/최한종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