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차주영 "'이런 날도 있으려고 버텼구나' 싶어요"

허영심 가득한 학교 폭력 가해자 최혜정 역
"노출은 대역과 CG 도움 받아…혜정이에게 꼭 필요했던 장면"

"동은이(송혜교)가 아니었다면 혜정이가 괴롭힘을 당했을 건 분명해요.

그렇다고 혜정이의 가해가 정당하게 비칠까 봐 고민이 많았어요.

"
1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차주영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속 '스튜어디스 혜정'이 전혀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배역과 다른 분위기였다.

인터뷰 질문에 대한 일목요연한 그의 답변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고, 연기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차주영이 '더 글로리'에서 연기한 최혜정은 허영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어떻게든 상류층 사회에 진입하려고 몸부림치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학창 시절 상류층 자제인 박연진(임지연 분)과 이사라(김히어라)의 심부름 등을 도맡는 일종의 '시녀' 역할을 하면서도 그들과 계속 어울리기 위해 자신을 대신하는 피해자를 악랄하게 괴롭혔다.

차주영은 "자칫하면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핑계로 혜정이가 동정심을 유발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문동은과 달리 최혜정은 결국 자기 욕심에 굴복하고 나쁜 일을 저질렀잖아요.

명백한 가해자가 됐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눈치가 빠르고 처세술도 뛰어난 혜정은 승무원이 되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힘없는 '세탁소집 딸'로 살았던 학창 시절 때와 다르지만, 최혜정은 여전히 박연진과 이사라의 멸시를 견디면서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애쓴다.

차주영은 "학창 시절 인연을 끊어내고 충분히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는데도 여전히 그들과 붙어 다니는 최혜정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혜정이는 그 무리에 속해 콩고물처럼 떨어지는 좋은 것들을 누리잖아요.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만든 세계에 잠식됐던 것 같아요.

"
극 중 최혜정은 박연진 앞에서 당당하게 옷을 벗어 던지며 파격적인 노출로 화제를 끌기도 했다.

차주영은 이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대역과 CG 등의 도움을 받았다며 "박연진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장면은 최혜정에게 꼭 필요했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혜정이는 가진 게 외모밖에 없는 캐릭터"라며 "현실적으로 최혜정에게는 박연진을 이길 방법이 하나도 없다"고 짚었다.

"최혜정이 박연진 앞에서 유일하게 자신감을 내비치는 장면이잖아요.

'인제야 내가 너한테 한 방 날린다!'는 느낌이라서 꼭 필요했다고 생각했어요.

"

26살에 비교적 늦은 나이로 데뷔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차주영에게 '더 글로리'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고 한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두 달 가까이 오디션을 하느라 피가 말랐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감독님과 마지막 미팅 날이었어요.

이미 내 매력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했고 오늘은 내 솔직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죠. 최혜정 그 자체로 미팅에 들어가서 '잘 지냈어요?'라는 감독님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X같이 지냈어요'라고 답했어요.

감독님이 빵 터지면서 '이거다' 하시더라고요.

"
그렇게 김은숙 작가의 대본을 받게 된 차주영은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며 "저를 비롯한 배우들 모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대본에 충실히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와닿았던 대사로는 에덴 빌라 집주인으로 출연한 배우 손숙의 대사 "봄에 죽자"였다고 꼽았다.

"앞이 안 보이고 미래가 막막한 날들이 있잖아요.

'봄에 죽자'라는 말은 그래도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찾아온다는 뜻을 내포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배우로서 힘든 시기를 견뎠는데 요즘은 '아 이런 날도 있으려고 버텨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말레이시아로 유학하러 가서 미국에서 대학교를 마친 차주영은 배우라는 꿈을 좇기 위해 가족들에게 만 30세까지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약속한 나이가 됐는데도 내놓을만한 성과가 없어서 '배우라는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며 "너무 힘들었지만 마음을 다잡는 시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너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어. 뭘 쥐고 있었다고….' 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밝혔다.

'더 글로리'를 만나 배우로서 큰 전환점을 맞은 차주영은 "아직 못 해본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스튜어디스 혜정이'로서 받은 관심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파트 1이 공개된 후에는 일부러 들뜨지 않으려고 반응을 외면하기도 했어요.

근데 이제 저는 '그다음'을 해나가야 하니까…. 파트2 가 끝나고 다음 작품 시작하기 전까지 이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기는 즐겨도 되지 않을까요?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