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임박설이 끊이지 않던 스위스 대형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결국 ‘주가 사상 최저’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지난 주말 시작된 중소 지역은행 줄도산 공포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유럽 대륙에서는 또 다른 위기가 불거지는 모양새다.

○‘방어막’ 사우디 은행의 외면

대형은행 CS 파산 현실화?…BNP파리바 등 유럽 은행주 동반 폭락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크레디트스위스의 위기설이 심화한 것은 두 차례의 미국 중소 은행 파산 이후 단 며칠 만”이라며 “미국의 지방 은행을 강타한 문제들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이동 중이라는 우려가 증폭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스위스 취리히 증권거래소에서 크레디트스위스 주가는 하루 만에 30% 가까이 폭락해 주당 1.62스위스프랑으로 주저앉았다. 극심한 변동성으로 인해 거래소는 일시적으로 주식 거래를 중단하는 서킷 브레이커를 수차례 발동했다.

이는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국립은행(SNB)이 방어막 역할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대규모 투자 손실로 곤경에 빠진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해 11월 사우디국립은행에서 자금을 수혈받으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37%를 소유하고 있는 사우디국립은행은 크레디트스위스 지분 9.9%를 15억스위스프랑(약 2조1400억원)에 인수한 후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날 아마르 알쿠다이리 사우디국립은행 회장은 추가 유동성 공급을 거부했다. 그는 블룸버그TV를 통해 “다른 은행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수 없다는 법규정 때문에 크레디트스위스에 대한 추가 증자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디트스위스를 둘러싼 불안한 움직임은 핵심 인력의 이탈에서도 감지됐다. 이날 인도 매체 머니컨트롤 등에 따르면 20년 넘게 크레디트스위스에 몸담아왔던 아시아태평양 전략 공동책임자인 닐칸스 미슈라는 최근 회사를 떠나 인도 액시스은행으로 적을 옮기기로 했다.

○예견된 위기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겸 투자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SVB 파산에 이어 무너질 가능성이 큰 은행으로 크레디트스위스를 지목한 바 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예고한 인물로 유명하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영국 그린실캐피털과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의 아케고스캐피털에 대한 투자 실패 등 각종 금융 스캔들로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고객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4분기부터 1100억스위스프랑(약 156조원) 이상이 인출되는 등 고객들의 계속된 현금 출금에 시달려 왔다.

은행이 고객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대규모 캠페인을 벌였음에도 이달까지 인출 행렬은 이어졌다. 울리히 쾨르너 크레디트스위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SVB와는 달리 크레디트스위스는 고품질의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순자산 유출이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 역전되진 않았다”고 밝혔다.

크레디트스위스는 5개 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영업수익 또한 큰 폭으로 감소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해 4분기 13억2000만스위스프랑의 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기업금융(IB) 사업 부문에서 영업수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73% 급감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자랑하는 자산관리(WM) 사업부문도 고객 자금 이탈 영향으로 영업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한편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전날 미국 전체 은행 시스템에 대한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미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SVB와 시그니처은행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고 이날 WSJ는 보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