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2위 전자결제 업체 스트라이프.
글로벌 2위 전자결제 업체 스트라이프.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실리콘밸리 벤처업계에 투자 '빙하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SVB 파산 이후 첫 대규모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이뤄졌지만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기업가치는 반토막 났다. 이미 9년 전 유니콘에 등극한 대형 업체조차 큰 폭의 기업가치 할인을 피하지 못하면서 중소형 스타트업의 줄도산까지도 우려된다.

세계 2위 결제업체도 피하지 못했다

글로벌 전자결제 기업인 스트라이프는 15일(현지시간) 기업가치 500억달러로 65억달러의 자금조달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 설립된 스트라이프는 아마존, 구글, 소피파이 등 전자상거래업체들에 결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며 시장 점유율 글로벌 2위 전자결제 업체로 성장했다. 2011년 시드 투자부터 2021년 시리즈 H를 거쳤고 이번엔 아홉 번째인 시리즈 I다.

SVB 파산 이후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뚫어내긴 했지만 기업가치는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전자결제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던 2021년 스트라이프는 기업가치 950억달러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VC업계에 투자금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회사는 지난해 7월 내부적으로 기업가치를 740억달러로 기존보다 28%를 낮춰 자금 조달에 나섰다. 올 1월에는 이를 630억달러로 하향 조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하지만 SVB 파산 이후 500억달러까지 하락한 것이다.

이같은 큰 폭의 하락은 기존 투자자들의 투자 손실을 의미한다. 스트라이프에는 초기 단계부터 실리콘밸리의 쟁쟁한 투자자들이 투자에 참여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11년 시드 투자에도 참여했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VC인 안드리슨호로위츠, 제너럴캐털리스트, 파운더스펀드 등이 기존 투자자들도 이번 시리즈 H에 참여하며 회사의 가치 하락을 인정했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등이 신규로 투자했다.

얼어붙은 실리콘밸리 투자 심리

스트라이프의 기업가치 하락은 실리콘밸리 벤처업계에 투자금 모집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대변한다. 작년에 자금 조달을 하지 않고 버틴 스타트업들은 당장 자금난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미국벤처캐피털협회(NVCA)에 따르면 미국 VC 투자 규모는 2021년 4분기 939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급감했다. 작년 4분기 VC 투자 규모는 362억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1.4% 쪼그라들었다. 그만큼 스타트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다. 기존에 받은 투자금으로 버텼던 회사들도 한계에 달했으며 기업가치를 기존에서 큰 폭으로 줄여서라도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다.
줄어드는 전세계 벤처펀드 결성 규모.      자료 : CB인사이트
줄어드는 전세계 벤처펀드 결성 규모. 자료 : CB인사이트
기관 투자가들의 벤처펀드 출자도 크게 줄었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작년 연간 벤처펀드 결성 규모는 4151억달러로 역대 최대였던 6384억달러로 35% 감소했다. 분기별로는 2021년 4분기 1807억달러로 역대 최대로 정점을 찍은 벤처펀드 결성 규모는 지난해 꾸준히 감소했고, 지난 4분기 659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약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이는 2020년 2분기 이후 가장 적다.

한 실리콘밸리 VC 관계자는 "운영자금이 바닥난 스타트업들은 가치를 깎고서라도 조달에 나설 수 밖에 없다"며 "중소 스타트업들은 SVB 파산 이후 얼어붙은 투자 환경을 극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