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특정 국가에 대한 원자재 의존도를 줄일 것입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6일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고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EU는 CRMA를 통해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를 위한 신속한 인허가와 지원을 확대하고 역내 가공 역량과 재활용 확대를 위한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EU '제3국 원자재' 의존도, 2030년까지 65% 밑으로 낮춘다

역내 원자재 가공 역량 40%로 높여


이날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CRMA 초안에 따르면 집행위는 2030년까지 제3국에서 생산된 전략적 원자재 의존도를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전날 유럽의회 본회의 연설에서 “우리가 공급받는 희토류의 98%, 마그네슘의 93%는 중국산”이라며 “팬데믹과 전쟁이 남긴 교훈이 있다면 동맹국과 공급망을 강화하고 다각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EU는 또 전략적 원자재 최소 10%의 역내 추출·생산, 최고 40% 역내 가공, 최소 15% 재활용 등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을 초안에 담았다. 이 같은 원자재 관련 목표를 추진하고 관리하는 중앙기관인 유럽 핵심원자재위원회도 신설하기로 했다.

EU는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역외의 제3국도 참여할 수 있는 ‘전략적 프로젝트’를 설정해 인허가를 신속하게 하고 금융 지원을 하기로 했다. 또 ‘핵심 원자재 클럽’을 창설해 제3국과 원자재 공급망 확보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EU는 주요 7개국(G7) 중심으로 클럽을 구성한 뒤 아프리카, 아시아의 주요 광물 수출국과 협정을 맺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자동차 모터의 필수 부품으로 꼽히는 영구자석 재활용 비율 및 재활용 가능 역량에 관한 정보 공개 요건이 초안에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당장 폐배터리 재활용 의무화를 제시하진 않았지만, 영구자석의 비율은 물론 영구자석을 분리해 재활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초안에는 500명 이상, 연간 매출 1억5000만유로(약 2100억원) 이상인 역내 대기업을 대상으로 공급망 감사를 주기적으로 시행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주요 대기업도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3자 협의 거쳐 확정

이날 공개된 초안은 집행위와 유럽의회, EU 27개국으로 구성된 이사회 간 3자 협의를 거쳐 확정된다. 법안 초안에는 구체적인 보조금 규모와 재활용 정보공개 의무조항 비율 등이 포함되지 않아 향후 세부 이행 방안이 추가로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EU 집행위원회는 탄소중립산업법도 발표한다. CRMA는 친환경 산업에 필요한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 및 다각화를 목표로 하는 데 비해 탄소중립산업법은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췄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전날 탄소중립산업법을 예고하며 “2030년까지 필요한 청정 기술의 최소 40%를 역내에서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며 “보조금 지급 요건을 단순화하고 세액공제, EU 기금의 유연한 활용을 허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U가 미국 등 각국과 보조금 경쟁을 벌이는 데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유럽 싱크탱크인 브뤼겔은 “EU가 녹색 전환을 산업 패권을 되찾을 기회로 삼기 위해 청정 기술 지원을 강화하고 있지만 지나친 보호주의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