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에 이어 미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고위 경영자들도 사태가 불거지기 전 적극적으로 보유 주식을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진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포브스의 16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고위 경영자 6명은 1월 17일부터 3월 6일까지 약 50일 동안 회사 주식 9만682주를 매도했다. 이 기간 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최고 140달러대에서 거래됐다. 이들의 평균 매도가는 주당 130달러다. 16일 종가(34.27달러)의 4배에 가깝다. 총매도액은 1180만달러(약 154억원)로 추산된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을 세운 짐 허버트 회장은 1~2월 중 보유 주식을 450만 달러(약 58억원)어치 매각했다. 허버트 회장 측은 자선 활동과 부동산 관련 계획에 따른 자금 마련 목적으로 주식을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전체 보유량의 4%만 매각했다고도 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자산관리책임자인 로버트 손턴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 중 73%를 350만달러에 팔았다. 최고신용책임자인 데이비드 릭트먼은 SVB가 파산하기 직전인 지난 6일에도 주식을 처분, 총 250만달러어치를 처분했다. 마이클 로플러 최고경영자(CEO)는 1월에만 100만달러어치를 팔았다.

앞서 SVB의 그레그 베커 회장 겸 CEO는 회사가 파산을 공식 발표하기 11일 전인 지난달 27일에 모회사인 SVB파이낸셜 주식 1만2451주(약 360만 달러어치)를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경영진의 대규모 주식 처분은 그동안 투자자들의 눈에 포착되지 않았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내부자 주식 거래를 보고하고 공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법에 따르면 은행에는 SEC 보고 의무가 면제된다. 하지만 15일 기준으로 S&P500 기업 중 이처럼 SEC에 내부자 거래를 보고하지 않는 기업은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이 유일하다. 앞서 파산한 시그니처 은행도 퍼스트리퍼블릭 은행과 유사한 행태를 보였지만, 시그니처은행은 현재는 S&P500 기업에서 제외됐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SEC 대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내부자 거래를 보고했는데, 투자자들이 여기까지는 잘 확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SVB, 시그니처 은행에 이어 파산할 가능성이 큰 곳으로 지목돼 왔으나 16일 JP모간체이스 등 11개 대형 은행이 300억달러를 예치하기로 하면서 일단 급한 불을 껐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주가는 9.98% 상승 마감했으나, 장 마감 뒤 시간외거래에서는 16.98% 하락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