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더 글로리'
/사진=넷플릭스 '더 글로리'
"우리 예솔이의 '퍼스트 구찌'(First Gucci)야."
"네가 제일 적게 입었는데, 다 디올이어서."
"너 때문에 샤넬 하나 날렸다."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등장한 대사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학교 폭력의 후유증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작품 속에서 등장한 상품들에도 이목이 쏠리는 상황이다.

극 중 학교 폭력의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을 괴롭히며 '동은오적'으로 불리는 일진 패밀리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거나 부유한 친구들에게 기생하며 살아간다. 그 때문에 부유층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명품들이 대거 등장하고, 브랜드 이름도 거리낌 없이 나온다. 하지만 확인 결과 극 중 등장한 모든 명품 브랜드는 PPL이 아니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주연 배우 송혜교가 오랫동안 명품 브랜드 펜디의 앰버서더인 점을 짚으며 "펜디가 제작에 참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명품뿐 아니라 병원장의 아들이었던 주여정(이도현 분)과 건설사 대표 하도영(정성일 분)의 자동차는 제네시스, 문동은의 차는 투싼, 강현남(염혜란 분)의 차가 NF쏘나타인 점을 보고 "현대차가 제작 지원을 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실제로 '더 글로리'에서는 다양한 차종이 등장하는데, 전재준(박성훈)의 차는 럭셔리 차 브랜드로 알려진 벤틀리의 벤테이가, 박연진(임지연 분)의 차는 벤츠 S클래스 세단이었다.

다만 주여정이 아버지를 살해한 살인범의 편지로 느끼는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발포 비타민을 물에 넣는 장면에서 사용되는 해당 브랜드의 비타민은 정식으로 제작 협조가 이뤄졌다. 대본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건강보조식품이고, 발포비타민을 사용하는 장면이 자세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제작 협조를 받게 됐다는 게 넷플릭스 측의 설명이었다.
/사진=넷플릭스 '더 글로리'
/사진=넷플릭스 '더 글로리'
넷플릭스 관계자는 "제작 협조 때문에 만들어진 장면은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 "넷플릭스는 엔터테인먼트의 경험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팬들이 좋아하는 콘텐츠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다른 브랜드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긍정적인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에서는 코카콜라, 나이키 등과 협업했고, 협업 컬렉션까지 출시했다. 시리즈 공개에 맞춰 세계 곳곳에서 팝업 스토어가 설치돼 극 중에 등장한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특히 1985년 코카콜라 흑역사로 통했던 '뉴코크'는 '기묘한 이야기'에서 1980년대를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후 팬들의 지지를 받아 재출시까지 이뤄졌다.

다만 실제로 PPL이 없었던 '더 글로리'에서 "PPL이 진짜 없냐"는 반응은 제작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오징어게임'에서도 삼양라면과 편의점 로고가 그대로 공개됐지만, PPL 의심을 받지 않았다. 앞서 TV 드라마에서 제작비 확충을 위해 적극적으로 PPL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진 김은숙 작가에게 일부 시청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방송사에서 드라마나 예능이 만들어질 경우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간접 광고 형태로 특정 브랜드를 노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때론 시청에 방해할 정도로 과도한 PPL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으로 접수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의 오리지널 경우 제작비를 전액 부담하면서 PPL 등 간접광고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한 관계자는 "현대 드라마에서 브랜드나 명칭을 바꿔가면서 쓸 순 없지 않냐"며 "극에서 실제 브랜드나 명칭이 등장하더라도 리얼리티를 높이는 장치로 생각하셨으면 한다. 현장에서도 이미지 훼손이 없는 경우라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글로벌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PPL 없이 더욱 자유로운 제작 환경이 된 부분에 대해 오히려 반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제작 관계자는 "작품에 광고를 욱여넣어야 하는 걸 반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글로벌 포맷에 맞춘 글로벌 콘텐츠를 제작하는 상황에서 완성도 그 자체만 생각하고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한 건 제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