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공사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중국 활용법'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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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가 10년짜리 공항 면세점 입찰을 진행하면서 펼친 전략은 공기업 역사에 길이 남을만하다. 총 5개 구역 매장에 대해 최저입찰가의 최대 170%에 달하는 임대료를 받기로 했으니 영화에 비유하면 흥행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게다가 국내 1위이자 글로벌 2위로 평가받은 롯데면세점이 5개 구역 모두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변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다. 롯데 간판이 인천공항에서 사라지는 것은 국내 면세점 역사상 처음이다. 일각에선 공사 관계자들은 상업 구역을 비싼 값에 임대하기로 한 것 못지않게 롯데의 콧대를 꺾은 것을 자축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연출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라는 ‘깜짝 스타’를 기용해 결과적으로 면세 사업자 간 출혈경쟁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공사 입장에선 블록버스터급 흥행이다.
조(兆) 단위 적자에 시달리는 공사로선 가뭄의 단비를 만난 격이다. 하지만 국내 트래블 유통(면세품 유통) 시장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비싼 임대료는 자칫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항 이용료 등을 올리면 자칫 허브 공항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현재 인천공항의 시설 사용료는 싱가포르 창이공항, 일본 나리타 공항 등 경쟁 공항에 비해 20~4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는 쉬운 길을 택했다.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비항공 수익(면세점 임대료 등 상업수익 포함)에서 돈을 최대한 버는 데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는 매출 2조7592억원 중 66.3%(1조8297억원)가 비항공 수익이었다. 항공편 운항이 끊겼던 2020년에는 79.2%(8693억원)까지 늘어났다.
공사는 단숨에 흑자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해외 심포지엄에 참석해 ‘인천의 문호는 개방돼 있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공사의 각본에 CDFG가 호응하고 나섰다. 공사의 면세사업을 총괄하는 팀장을 역임한 A씨를 자문역으로 고용하는 등 CDFG는 첫 해외 진출지인 인천공항 입성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듯했다.
롯데면세점은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BEP(손익분기점)를 맞출 수 있는 최대한의 가격”을 써냈음에도 모든 권역에서 고배를 마셨다. 1, 2위 권역과 5권역에 응찰한 롯데면세점은 권역별로 최저가를 썼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향수, 화장품, 주류, 담배를 취급하는 규모가 큰 DF1과 DF2(이상 T1) 중 하나를 차지하고, 이게 안 되더라도 비교적 규모가 작은 부티크 전문 DF5(D3,4 포함해 T2)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롯데의 전략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T2에서 D3, 4 권역을 신라와 신세계가 가져갈 경우 D5 권역은 동일 사업자 중복 금지 조항에 따라 롯데와 현대백화점면세점이 복수로 관세청에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공사 측은 완전히 다른 결론을 냈다. D3, 4를 누가 가져갈지와 무관하게 D5 역시 가격순으로 줄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D5엔 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이 후보로 올랐다. D3, 4에서 신라와 신세계가 하나씩을 가져간다면, 현대백화점면세점은 경쟁 없이 D5의 운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면세점 업계에선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최후의 승자”라고 입을 모은다. 입찰 최저가의 최대 170%에 달하는 임대료는 2019년을 기준으로 해도 전체 매출의 40%에 육박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도록 구매전환율을 최대로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흑자를 내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게다가 국내 1위이자 글로벌 2위로 평가받은 롯데면세점이 5개 구역 모두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변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다. 롯데 간판이 인천공항에서 사라지는 것은 국내 면세점 역사상 처음이다. 일각에선 공사 관계자들은 상업 구역을 비싼 값에 임대하기로 한 것 못지않게 롯데의 콧대를 꺾은 것을 자축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연출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라는 ‘깜짝 스타’를 기용해 결과적으로 면세 사업자 간 출혈경쟁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공사 입장에선 블록버스터급 흥행이다.
조(兆) 단위 적자에 시달리는 공사로선 가뭄의 단비를 만난 격이다. 하지만 국내 트래블 유통(면세품 유통) 시장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비싼 임대료는 자칫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사 ‘연출’, 중국면세점그룹 ‘주연’의 막장 드라마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21년 순손실을 내면서 기관 등급 C를 받았다. 무슨 수를 쓰든 흑자 구조를 만드는 게 공사 경영진의 지상 과제로 떠올랐다. 해외 항공사로부터 받는 시설 이용료 등 항공 수익을 올리는 데엔 한계가 자명했다. 수많은 항공사와 협상을 벌이려면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결과도 장담하기 힘들다.게다가 공항 이용료 등을 올리면 자칫 허브 공항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현재 인천공항의 시설 사용료는 싱가포르 창이공항, 일본 나리타 공항 등 경쟁 공항에 비해 20~4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는 쉬운 길을 택했다.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비항공 수익(면세점 임대료 등 상업수익 포함)에서 돈을 최대한 버는 데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는 매출 2조7592억원 중 66.3%(1조8297억원)가 비항공 수익이었다. 항공편 운항이 끊겼던 2020년에는 79.2%(8693억원)까지 늘어났다.
공사는 단숨에 흑자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해외 심포지엄에 참석해 ‘인천의 문호는 개방돼 있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공사의 각본에 CDFG가 호응하고 나섰다. 공사의 면세사업을 총괄하는 팀장을 역임한 A씨를 자문역으로 고용하는 등 CDFG는 첫 해외 진출지인 인천공항 입성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듯했다.
글로벌 1위 넘보던 롯데면세점, 인천공항서 퇴출되는 ‘이변’
하지만 결과는 예상외로 나왔다. CDFG를 포함해 5개 국내외 면세점 사업자들이 5개 권역 각각에 대해 입찰가격을 써냈는데 5개 권역 모두에서 신라와 신세계가 모두 1, 2위를 차지했다. 최저입찰가의 최대 170%를 써낸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가를 쓸 것으로 예상했던 CDFG는 130~140%의 가격을 제출했다.롯데면세점은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BEP(손익분기점)를 맞출 수 있는 최대한의 가격”을 써냈음에도 모든 권역에서 고배를 마셨다. 1, 2위 권역과 5권역에 응찰한 롯데면세점은 권역별로 최저가를 썼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향수, 화장품, 주류, 담배를 취급하는 규모가 큰 DF1과 DF2(이상 T1) 중 하나를 차지하고, 이게 안 되더라도 비교적 규모가 작은 부티크 전문 DF5(D3,4 포함해 T2)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롯데의 전략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T2에서 D3, 4 권역을 신라와 신세계가 가져갈 경우 D5 권역은 동일 사업자 중복 금지 조항에 따라 롯데와 현대백화점면세점이 복수로 관세청에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공사 측은 완전히 다른 결론을 냈다. D3, 4를 누가 가져갈지와 무관하게 D5 역시 가격순으로 줄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D5엔 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이 후보로 올랐다. D3, 4에서 신라와 신세계가 하나씩을 가져간다면, 현대백화점면세점은 경쟁 없이 D5의 운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면세점 업계에선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최후의 승자”라고 입을 모은다. 입찰 최저가의 최대 170%에 달하는 임대료는 2019년을 기준으로 해도 전체 매출의 40%에 육박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도록 구매전환율을 최대로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흑자를 내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