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센터에 있는 집무실에서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 업무 허용 등 업계 주요 현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센터에 있는 집무실에서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 업무 허용 등 업계 주요 현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기업들이 증권회사 계좌를 통해서도 이체와 송금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은행 통장보다 이자를 많이 주는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직원들의 월급 통장으로 쓸 수 있어 국민 효용과 편익을 높일 수 있습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센터에 있는 집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증권사에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월 취임한 서 회장은 법인 지급결제 허용을 금융투자업계의 가장 큰 숙원 사업 중 하나로 꼽았다. 금융당국은 은행 과점체제 해소를 위해 지급결제 업무를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증권사에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업무가 허용되면 기업이 증권사를 통해 ‘소액 대량 자금이체(CMS)’를 할 수 있습니다. 이자를 많이 주는 CMA(17일 기준 연 2.80~3.55%)를 직원 월급 통장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얘기죠. 판매대금 결제, 공과금 납부 등도 증권사 계좌로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금융 소비자들의 편익과 효용이 증대되는 효과가 큽니다.”

▷그동안 왜 허용이 안 됐나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2009년 6월부터 증권사도 지급결제 업무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은행권이 반대하자 금융결제원 규약을 통해 증권사의 경우 개인만 지급결제를 허용하고 법인은 금지했습니다. 증권사들은 자본시장법 개정에 발맞춰 금융결제원에 4000억원의 지급결제망 진입비용까지 냈지만 14년간 반쪽짜리 지급결제만 하고 있습니다. 법인 업무도 허용해 서비스를 온전히 할 수 있도록 해야죠.”

▷일각에서는 결제 안전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합니다.

“자본시장법은 증권사의 자금이체 대상을 투자자 예탁금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투자자 예탁금의 100%는 한국증권금융에 예치되기 때문에 결제 불이행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리스크 관리를 위해 개인 지급결제의 경우 증권사가 대행 은행을 지정한 뒤 그곳을 통해 최종적으로 결제해오고 있습니다. 법인 지급결제 역시 이 같은 구조를 따를 것입니다.”

▷대체거래소(ATS)는 언제 출범하나요.

“협회와 증권사들이 공동 설립하는 ATS는 올해 예비인가와 본인가를 마치고 이르면 내년 말 문을 열 예정입니다. 지금은 상장 주식만 거래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ATS 설립 후 주식 거래에서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상장지수펀드(ETF), 토큰증권(ST) 등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매매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공모펀드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ETF 시장이 커지며 공모펀드 인기가 줄고 있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입니다. ETF는 주식처럼 사고팔기 때문에 거래 편의성이 공모펀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습니다. 수수료도 낮죠. 공모펀드를 ETF 형태로 바꿔 상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공모펀드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당국과 논의해 법적 근거와 제도를 빨리 마련하겠습니다.”

▷공모펀드 상장을 위해 풀어야 할 규제가 있나요.

“국내 ETF는 지수를 추종해야 합니다. 액티브 ETF도 지수와의 상관계수를 0.7 이상 유지(70% 이상 지수를 따라가고 30% 미만만 운용 자율성 부여)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액티브 ETF는 지수를 추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도 지수를 추종하지 않거나 상관계수를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펀드매니저가 자유롭게 운용하는 액티브 공모펀드가 액티브 ETF로 바뀌어 상장될 수 있습니다. ETF 투자 포트폴리오를 매일 공개하도록 하는 규제도 걸림돌입니다. 투자 전략 노출을 꺼리는 펀드매니저가 많습니다. 공모펀드는 한 달에 한 번만 공시하면 됩니다. 액티브 ETF도 펀드매니저가 포트폴리오를 매일 공시할지, 지연 공시할지 등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ETF 운용 경험이 없는 중소형 자산운용사는 경쟁력이 있을까요.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이라도 운용 기간이 길고 이름이 제법 알려진 공모펀드를 갖고 있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현재 ETF는 신규 상장만 가능합니다. 보통 50억~100억원 사이 규모로 상장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기존 공모펀드를 ETF로 바꿔 상장하면 처음부터 큰 자산 규모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탁액 5000억원짜리 공모펀드를 상장하면 운용자산 5000억원짜리 ETF가 되는 거예요. 펀드 가입 고객은 투자금액만큼 ETF 좌수(주식수)를 갖게 됩니다. 대형 운용사들은 증권사 등 유동성공급자(LP)와 오랜 기간 쌓아온 네트워크가 있어 LP들이 ETF 거래가 잘 이뤄지게 뒷받침해줍니다. 중소형 운용사는 이런 네트워크가 부족한데, 처음부터 큰 규모로 ETF를 상장한다면 LP 도움 없이도 거래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일 방안은 없을까요.

“주식, 채권, 대체자산에 모두 투자하는 자산배분펀드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타깃인컴펀드(TIF),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펀드 등이 대표적입니다. 자산배분펀드는 주식형 펀드보다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으나 안정성이 높습니다. 꾸준히 연 6~8% 수익률을 낼 수 있죠. 예금 등 원금보장형 상품에 들어 있는 적립금이 자산배분펀드를 디딤돌 삼아 투자형 상품으로 들어오면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투자 문화 정착을 위해 어릴 때부터 금융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금융교육입니다. 현재도 오프라인, 동영상, 웹툰 등을 통해 활발히 교육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 과정에 금융교육이 들어가도록 국회, 정부, 교육청 관계자들과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겠습니다. 방과후 교실도 활용할 생각이에요. 최근 몇 년간 코인이나 테마주 투자로 막대한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건전한 투자란 무엇이고 장점과 위험성은 어떤 것인지 학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유석 회장은 미래에셋 출신…증권·운용사 모두 거친 '겸손맨'

‘초심을 잃지 말자. 65.64’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의 집무실에는 이 같은 문구의 액자가 걸려 있다. 65.64는 지난해 12월 금융투자협회장 선거에서 그가 거둔 득표율(65.64%)이다. 대부분 결선 투표를 거쳤던 역대 회장 선거와 달리 서 회장은 압도적 득표율로 1차 투표에서 당선됐다. 그는 “선거운동 때 만난 금융투자업계분들의 당부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액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1962년생인 서 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대한투자신탁(현 하나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 미래에셋증권으로 옮겨 리테일사업부 대표, 퇴직연금추진부문 대표 등을 거쳤다. 2016년부터 2021년 11월까지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을 지냈다.

금융투자협회는 2009년 설립 이후 황건호 초대 회장부터 나재철 5대 회장까지 모두 증권사 출신이 협회장을 맡았다. 서 회장은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는 처음 당선됐다. 한 증권사 CEO는 “증권사와 운용사 업무를 두루 경험했고 겸손하다는 게 서 회장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