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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집중탐구
[마켓PRO]팔지도 크게 담지도 못해…증권가가 SK하이닉스 못 놓는 이유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주가 차이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설비투자를 지속한다는 소식에 악영향이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증권가 일각에선 결국 삼성전자 역시 감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SK하이닉스에 대한 단기적 투자매력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다만 그런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들도 미국의 반도체 규제 등을 감안한 장기적 비전에는 고개를 젓고 있긴 합니다. 한경 마켓PRO가 SK하이닉스를 둘러싼 투자 포인트를 정리해봤습니다.

"삼성전자도 못 버틸 것결국 감산 한다"

21일 SK하이닉스는 8만36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이번달에만 SK하이닉스의 주가는 6.49% 빠졌습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주가가 0.5% 하락에 그친 것과는 대조적이죠. 시장에선 몇몇 펀드매니저들이 삼성전자를 사고(롱), SK하이닉스를 파는(쇼트) 전략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수익을 가져가려다 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마켓PRO]팔지도 크게 담지도 못해…증권가가 SK하이닉스 못 놓는 이유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는 건 감산에 선을 긋고 있는 삼성전자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사실상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현금 사정이 녹록지 않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뺏어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죠. 실제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결과 작년 4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디램 및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각각 4.4%포인트, 2.24%포인트 상승, SK하이닉스는 1.1%포인트, 1.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선 삼성전자 역시 감산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의 반도체부문이 연간으로 영업손실이 7~8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 A씨는 "반도체 가격 하락폭이 예상치보다 더 크게 나오고 있는데도 출하량이 나오질 않아 재고가 계속 쌓이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공급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라며 "작년 말 재고가 10~20%가 올 상반기 더 쌓인다고 가정하면 감산을 10~20%해야 이익이 겨우 방어되는 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A씨는 "삼성전자의 메모리사업부도 적자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더 버티긴 어려워 보인다"며 "결국 감산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언제인진 모르지만 오른다"
소심하게 담는 펀드매니저들

때문에 삼성전자를 사고 SK하이닉스를 파는 '롱숏전략'은 지금 시점에서 실익이 크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업황 둔화에 워낙 취약하다 보니 단기적으로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기 공포감이 큰 시기는 지났고, (언제가 될 지 모르는)업황 반등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나 입장은 비슷하다는 거지요.

다만 반도체 업황 반등 추정 시점은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습니다. 작년만해도 증권가에선 올 상반기 중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었는데, 최근엔 올해 말 반등할 것으로 컨센서스가 모여지고 있습니다. 만약 가격반등이 일어나면 오로지 반도체만 만드는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단 훨씬 더 크게 주가가 오르겠지요. 많은 펀드매니저들은 반도체 가격이 바닥권이긴 하기 때문에 재고 재축적(리스톡킹)이 이뤄지면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는 있습니다. 다만 그 가격반등이 대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 있게 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다만 또 다른 시장관계자 B씨는 "결국 반도체는 시클리컬이기 때문에 지금 담아두면 언젠가는 돈을 벌게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마켓PRO]팔지도 크게 담지도 못해…증권가가 SK하이닉스 못 놓는 이유

美규제에 중장기 전망은 '먹구름'
"이대로라면 韓반도체 위험"

주의할 점은 SK하이닉스의 단기적 전망을 좋게 보는 펀드매니저들의 상당수가 장기적 전망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미국의 반도체 규제 때문입니다. 시장 전문가들 중에선 1980년대 미국이 일본과 맺었던 반도체 협정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 반도체 회사들이 세계를 호령하자, 미국 내 일본 반도체의 점유율을 50% 이하로 제한하고 일본 내 미국 반도체 수입량을 20%까지 늘릴 것을 골자로 하는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 반도체 업체는 급속히 경쟁력을 잃어버렸죠. 지금 한국과 대만 반도체 업체들을 향해 미국 측이 '중국 공장에서 만든 제품은 못 판다', '미국에 공장지어라' 하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라는 겁니다.

A씨는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야 미국이 성장 과정에서 도와준 이력이 있으니 아니꼽게 봐도 할 말 없는 부분이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도 않다"라며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반도체 패권을 뺏어가려고 하고 있고 정부가 별 다른 협상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모양새여서 매우 걱정된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미국 입장에선 길게 보고 적당히 위협하고 풀어주는 척 하면서 미국 투자 유치하고 기술도 탈취해 갈 것"이라며 "외국인 투자자가 프랑스 증시를 사는 게 명품 때문이듯, 그들이 한국 증시를 사는 건 반도체 때문인데 그 반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한국 경제와 증시의 앞날 역시 우려될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죠.

그러면서 A씨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유예가 올 10월이면 끝난다"라며 "연장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고, 되더라도 1년 단위로 계속 유예하는 방식이라면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이 추가 투자를 못 한다.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