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넘어 워라인 시대…"직원을 고객처럼 대하라"
최근 ‘대퇴사 시대(The Great Regression)’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2021년 미국에서부터 유행처럼 번진 현상으로, 직장인의 자발적 퇴사가 대규모로 지속된 현상을 의미한다. 코로나 이후 사회 전반에 건강과 안전에 대한 인식이 커졌고 직장인들은 원격근무라는 새로운 환경을 경험했다. 이제 직장인들은 일과 삶이 양립할 수 있는 일자리를 더욱 선호하는 모습이다. 대퇴사 열풍은 일터와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대퇴사 현상은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는 새로운 세태로 이어졌다. 조용한 사직은 실제로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지만 직장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일만 하는 현상’을 말하는 신조어다. 미국의 20대 엔지니어 자이들 플린이 자신의 틱톡 계정에 올린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조용한 사직의 바람이 불었다. 특히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구성원 중심으로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 이러한 현상은 빠르게 확산됐다.

대퇴사 시대와 조용한 사직 현상은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과거에는 일을 위해 나의 삶을 희생하고 이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를 통해 얻는 인정과 보상, 승진 같은 결과물이 구성원에게 중요했고, 회사도 이러한 부분을 위주로 구성원을 관리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에서 나아가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 일과 삶의 융화)’이 강조되는 시대다. 기업은 인재부족 문제와 더불어 어떻게 하면 구성원을 일에 몰입시킬 수 있을지 걱정한다. 구성원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상태인지를 잘 아는 것이 조직을 운영하는데 중요한 화두가 됐다.

사실 이미 많은 기업에서는 구성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정기적인 조사를 실시한다. 오래전부터 ‘구성원 몰입(Employee Engagement)’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며 구성원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왔다. 일년에 한두번 설문조사를 통해 구성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직원몰입 조사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늘었다. 구성원의 만족도나 몰입수준을 정기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일종의 ‘건강검진’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이러한 결과가 어떠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정 시점의 ‘스냅샷’ 형태의 조사는 조직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벤트와 관계를 다각도로 조망하기 어렵다. 조사 시점의 분위기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렇다 보니 조사를 통해 무언가를 예측하거나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게 쉽지 않다.

직원몰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기업들은 ‘직원경험(Employee Experience, EX)’에 보다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직원경험은 마케팅에서 강조하는 고객경험(Customer Experience, CX)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고객경험은 고객이 가진 욕망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탁월한 경험을 제공할 때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끈다고 강조한다. 이와 유사하게 구성원을 ‘고객’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탁월한 경험을 줄 때 그들의 자발적인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게 직원경험의 핵심 메세지다.

직원경험 관리는 구성원의 관심사와 욕망, 현재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구성원 개개인에게 맞는 세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구성원의 상황과 특성은 저마다 다르고 이에 따라 그들의 욕망과 동기부여 요소도 제각각이다. 고객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듯 구성원 니즈에 따라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개개인의 니즈는 조직 내 ‘생애주기’ 동안 본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에 입사해서 성장하고 퇴직하는 순간까지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에 따라 원하는 니즈와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예를 들어 첫 출근의 순간, 승진한 순간, 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는 순간 등 동일한 사람이라도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따라 느끼는 감정과 필요한 요구사항이 달라진다.

따라서 탁월한 직원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라이프사이클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강렬한 순간(Moment of Impact, MOI)’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람은 어떤 흐름이나 전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순간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한 전환점이나 경계점에서의 강렬한 기억이 오래 남는다. 직원경험에 있어서도 이러한 ‘강렬한 순간’에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파악하고, 이에 적합한 실질적 솔루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직원경험을 높이기 위한 구성원 니즈를 파악할 때는 연 단위 대규모 조사보다는 짧은 주기로 구성원의 감정과 니즈의 변화 추이를 파악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니즈를 파악했다면 적합한 솔루션을 적정 시점에 제공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직원 목소리를 듣기만 하고 별다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그저 형식적이고 귀찮은 절차로만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적절한 후속 조치가 행해질 수 있도록 사전 준비가 요구된다. 조직 안에서 어떠한 전환점의 순간이 있고, 이 지점에서 구성원들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원인을 고려하여 조직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와 솔루션을 준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팀장으로 보임한 사람은 보임 직전의 기대와 불안, 보임 이후의 시련들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과 순간에 어떻게 하면 보다 긍정적인 경험을 줄 수 있을지, 조직 차원에서 사전적 혹은 사후적으로 적절한 대응을 해줄 수 있을지가 고민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회사는 직원들을 하나의 비슷한 집단으로 보았다. 직원들이 가지는 니즈는 대체로 유사하고 평균적일거라 생각하고, 회사가 정한 제도와 정책을 일방적으로 제시해도 무리가 없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구성원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다. 과거보다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고 각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직원경험을 고민함에 있어서도 하나의 솔루션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새로운 세대는 보다 다양한 니즈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욕망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나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경험을 원한다. 다양한 세대와 니즈를 고려한 맞춤형 직원경험을 제공해야 보다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대퇴사에 이은 조용한 사직의 시대다. 어떻게 하면 구성원이 회사와 일에 몰입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구성원들이 어떠한 생각과 니즈를 가지고 있는지, 그 목소리를 잘 듣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기업활동과 구성원의 삶이 정지된 ‘순간’이 아니라 계속되는 ‘흐름’이듯, 구성원 목소리를 듣는 것도 직원경험이라는 흐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어떠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혹은 직원경험을 관리하고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우리 조직에는 어떠한 변화가 필요할지 돌아볼 때다.

손송민 MERCER Korea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