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가 UBS에 인수되며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의 확산은 막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제 ‘본드런(연쇄 채권 매도)’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코코본드(조건부자본증권) 170억달러어치(약 22조원)가 휴짓조각이 되자 유럽 채권시장이 출렁였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채권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면서 골드만삭스는 “코코본드 수요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유럽 코코본드 가격 하락

20일(현지시간)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도이체방크와 바클레이즈, UBS, BNP파리바와 HSBC 등 유럽 은행들의 AT1 가격은 모두 떨어졌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바클레이즈가 2019년 3월 발행한 AT1 금리는 이날 21.4%로 최근 1년간 최저치인 4.4% 대비 크게 뛰었다. 채권은 금리가 뛴 만큼 가격이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이체방크와 HSBC의 AT1 금리는 각각 23%, 15.9%를 기록했다. 도이체방크의 최근 1년 최저치는 6.5%, HSBC는 5.5%였다. AT1 금리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수익률이 6~9% 하락했다.

AT1채권은 코코본드(조건부자본증권)의 일종으로 유사시 상각되거나 주식으로 전환된다. 원금을 잃을 수 있어 수익률이 높지만 실제 상각 처리된 경우가 드물어 인기가 컸다.


UBS는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하며 크레디트스위스가 발행한 코코본드 전액을 0원으로 상각했다. 그러나 크레디트스위스 주주들은 22.48주당 UBS 1주를 보상으로 받았다. 채권자가 주주보다 선순위라는 믿음이 깨진 것이다.

‘본드런’ 경고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용분석기관 사리아의 울프강 펠릭스 선임 애널리스트는 “화가 난 채권자들이 코코본드를 발행하는 다른 유럽 대형은행들로 달려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20일 “재정적 어려움이 커지는 시기에 투자자들이 이런 리스크를 어떻게 볼지 재평가해야 한다”며 “코코본드 수요가 영구적으로 파괴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각’이라는 코코본드의 위험성을 체감한 투자자들이 쉽사리 재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글로벌 투자사 타격…소송전 가나

코코본드 투자 위축으로 유럽 은행들은 앞으로 자본확충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상각이나 주식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코코본드는 회계상 자본으로 처리돼 은행들이 자본확충 수단으로 애용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코코본드 시장 규모는 2750억달러(359조원)으로 추산된다.

때문에 유럽중앙은행(ECB) 등 유럽 금융당국은 20일 공동성명을 내고 “주식이 첫 번째로 손실을 흡수하는 상품이며, AT1은 주식을 완전히 사용한 후 상각해야 한다”며 “이 접근 방식은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지켜졌으며 앞으로도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크레디트스위스가 본사를 둔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외신들은 스위스 금융당국은 구조조정 시 채권이 주식보다 우선하는 자본구조를 지킬 의무가 없다고 전했다.


문제는 크레디트스위스 코코본드를 보유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다.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자산운용사들과 헤지펀드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글로벌 채권운용사 핌코가 크레디트스위스 코코본드 상각으로 3억4000만달러(약 4452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미 투자은행 라자드 프레르, GAM인베스트먼트 등도 크레디트스위스 관련 익스포저(위험 노출 규모)가 큰 곳으로 거론된다.

법적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날 로이터는 로펌 ‘퀸 이매뉴얼 어콰트 앤드 설리번’을 인용해 영미와 스위스의 변호사들이 코코본드 투자자들과 법적 조치를 의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