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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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가 기업을 상대로 주주총회 소집이나 회계장부 열람을 청구하는 등 경영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행동주의 바람을 타고 주주 제안에 그치지 않고 소송까지 불사하며 기업의 대응을 끌어내려는 주주들이 늘어난 영향이란 평가다. 기업 매각을 둘러싸고 새 주인과 기존 주주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벌어지는 경영권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힘을 얻는 행동주의 열풍과 주주 권리를 보호하려는 정부 기조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경영권 소송이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화력 세진 주주들, 소송도 불사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20일까지 국내 상장사들이 휘말린 경영권 관련 소송은 총 88건(소송 제기일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0% 늘어났다. 소송을 당한 기업은 SM엔터테인먼트, KT&G, 태광산업, 헬릭스미스 등 42개사로 이 기간 90.9% 급증했다.

이들 기업이 맞닥뜨린 경영권 관련 소송은 △주주총회 소집 허가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 △의안 상정 가처분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 △주주총회 결의 무효 확인 △검사인 선임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행동주의를 내세운 펀드 운용사나 소액주주가 제기한 것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서한 전달 등을 통한 관여활동을 넘어 여러 소송을 연이어 제기해 제안 내용이 주총 안건으로 다뤄지도록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휘몰아치는 주주 행동주의…올해 경영권소송 60% 급증
오는 28일 정기 주총을 앞둔 KT&G 사례가 대표적이다. 칼라일그룹 한국지사 대표 출신인 이상현 대표가 이끄는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지난달 17일 △인삼공사 분리 상장 △1조1600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 △보통주 1주당 1만원 현금 배당 △분기 배당 도입 △사외이사로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황우진 전 푸르덴셜생명보험 대표 선임 등 11개 안건을 주총 안건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는 의안 상정 가처분 소송을 냈다. 지난해 10월부터 제기한 주주 제안에 회사가 응하지 않자 소송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 후 KT&G가 주주 제안 중 9개를 주총 안건으로 올리기로 하면서 FCP는 해당 소송에선 자사주 취득안건만 다투기로 했다. 이 회사는 이달 초 안다자산운용으로부터도 인적분할 등을 요구하는 의안 상정 가처분 소송을 당했지만 해당 소송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KT&G처럼 소송을 동반한 주주 행동주의에 휘말려 주주 제안을 주총 안건으로 채택하는 기업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주총을 개최하는 상장사 중 주주 제안을 안건으로 올린 기업은 42개사로 전년 동기보다 61.5% 증가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주주가 경영권 소송을 제기하면 해당 사실을 공시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은 평판 관리 등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며 “주주가 기업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수단으로 소송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인 교체 둘러싼 싸움도 격렬

기업 매각을 두고 일부 주주가 반발해 벌어지는 경영권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SM엔터는 현 경영진이 카카오를 새 주인으로 맞이하려다가 창업자인 이수만 전 SM엔터 총괄프로듀서와 격렬한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이 전 총괄은 지난 3일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에선 승리했지만 아군으로 끌어온 하이브가 카카오와 손을 잡으면서 경영권 싸움에선 패배했다.

새 주인을 거부하는 소액주주들과 소송전을 벌이는 기업도 적지 않다. 신약 개발업체 헬릭스미스는 지난해 말 신주 발행을 통해 카나리아바이오엠을 최대주주로 맞은 뒤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지난 1월31일 카나리아바이오엠 측 추천 인사를 사내사외 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의 임시 주총 전후로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 △검사인 선임 △증거 보전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 등을 줄줄이 제기했다. 진단업체 휴마시스도 지난 1월 차정학 대표 등이 보유 지분을 아티스트코스메틱에 매각한 뒤 소액주주들의 소송 공세를 받고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특히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중소·중견 상장사일수록 소액주주들이 경영권 분쟁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소송전이 더 격렬하다”고 말했다.

◆제도 변화도 행동주의에 ‘한몫’

전문가들은 최근 주주 행동주의를 바라보는 인식이 다소 바뀌면서 소송을 동반한 주주 관여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엔 행동주의는 최대주주 지배력이 약한 기업을 노려 공격한 뒤 시세차익만 챙기는 ‘약탈주의’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거나 주주 환원에 인색한 기업 등에 몸값을 올리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이 같은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주주 행동주의에 휘말린 기업의 주가가 상승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키움증권이 SM엔터, KT&G, 오스템임플란트, 태광산업, BYC 등 최근 행동주의의 표적이 됐던 11개 기업의 주가 변화를 분석한 결과, 주주의 행동주의 활동이 시작한 시점 이후 최고가에 이르기까지 평균 23.4%의 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 권리 보호를 강화한 제도가 연이어 도입되고 있는 것도 주주 행동주의에 힘을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보유 주식의 최대 3%로 제한한 ‘3%룰’이 도입된 데 이어 2021년엔 지분 10% 이상을 보유해야 사모펀드(PEF)가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도 폐지됐다. 지난해 말엔 상장사가 물적분할할 때 반대하는 주주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주는 제도가 시행됐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