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젠의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루게릭병) 신약후보물질 ‘토페르센’의 신속승인 및 정식승인 여부를 두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가 각기 다른 의견은 내놨다.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를 근거로 한 신속승인은 ‘만장일치’로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식승인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바이오젠은 22일(미국 시간) FDA의 말초신경계및중추신경계 약물 자문위원회가 토페르센에 대한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자문위는 9대 0으로 바이오마커에 근거한 신속승인에는 찬성했다. 임상 3상 자료를 근거로 정식승인을 허가할지에 대해선 3대 5(1 기권)로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FDA는 내달 25일까지 토페르센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자문위의 권고를 따를 필요는 없다.

제약업계에서는는 신속승인 목적으로 바이오젠이 토페르센에 대한 신약허가신청(NDA)을 올린 건에 대해 FDA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정식승인까지 함께 검토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파킨슨병 신약 개발 전문가는 “미국내 환자수가 300명에 그칠 정도로 희귀한 병증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이기 때문에 신속 승인 후 후속 임상을 한다 해도 위약군을 포함한 충분한 수의 환자 모집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같은 점을 고려해 FDA가 유연성을 이례적으로 발휘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토페르센은 루게릭병 환자 중 수퍼옥사이드디스뮤타제1(SOD1) 유전자 변이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신약후보물질이다. SOD1 변이는 루게릭병 관련 유전자 변이 중 2번째로 흔하다. 그러나 전체 루게릭병 환자 중에 1~2%에 그친다. 주요 증상은 근육 운동을 제어하는 뇌와 척수에서의 운동 신경세포(뉴런) 손실로, 평균 수명은 증상 발현 시점으로부터 3~5년 정도다. 매년 100명 정도가 이 병증으로 신규 진단 받는 데도 미국내 환자 수가 300여명에 그치는 이유다.

변이된 SOD1 유전자는 독성을 띠는 SOD1 단백질을 만든다. 이 독성 단백질이 운동 뉴런을 퇴화시키고 근육 약화를 유발한다. 토페르센은 변이 SOD1 유전자에서 전사된 SOD1 메신저리보핵산(mRNA)과 결합해 독성 SOD1 단백질의 생성을 저해하는 안티센스올리고뉴클레오티드(ASO) 기반 유전자 치료제다.

이번 자문위원회 회의에서의 안건은 크게 2가지였다. 바이오젠은 지난해 7월 FDA에 토페르센에 대한 신약허가를 신청하면서, 신속승인에 대한 검토를 함께 요청했다. 이에 따라 FDA는 자문위에 신속승인과 정식승인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자문위는 토페르센의 신속승인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허가를 권고했다. 근거는 루게릭병의 중증도 및 진행과 연관된 신경필라멘트경쇄(NfL) 수치의 변화다. 바이오젠의 임상 3상(VALOR)에 따르면 28주 동안 토페르센 투약군은 NfL 수치가 55% 감소했다. 위약군(가짜약을 투여한 환자군)은 12% 증가했다. 위약을 받다 토페르센으로 투여약물을 전환하는 확장 연구에서도, 토페르센 투약후 NfL 수치가 44% 감소했다. 이에 근거해 자문위 전문가들은 NfL의 감소가 SOD1 변이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임상적 이득이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토페르센의 정식승인 여부에 대해선 5명(55%)이 반대했다. 사실상 ‘불허’ 의견이다. 토페르센 3상에서 투약 6개월 후 환자의 운동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는지를 보는 1차 평가지표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이오마커 변화로는 임상적 이득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실제 효과는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FDA가 토페르센에 대해 신속승인만 할 경우, 바이오젠은 추가 임상을 통해 약의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 업계에선 바이오젠이 토페르센을 평가한 기간이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하기에 짧은 것이 아니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오젠은 추후 임상에서 추적 기간을 늘리고 임상 환자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통계적 유의성 확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 사이트 <한경 BIO Insight>에 2023년 3월 23일 16시 1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