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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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쌀 매입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이 실현되면 쌀 매입에만 매년 1조원 이상의 재정이 투입되고, 2~3년 뒤 사료용으로 10% 헐값에 처분하는 악순환이 심화될 것이란 정부의 호소에도 소용이 없었다. 쌀 산업의 시장 기능을 마비시키는 초유의 법이 통과되면서 쌀 대신 밀, 콩, 가루쌀 등 대체작물 재배규모를 늘려 자급률을 높이려던 윤석열 정부의 식량정책도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곧바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통해 개정을 무산시키겠다고 밝혔지만 민주당이 식량자급률 법제화, 쌀 재배면적 관리 의무화 등 양곡관리법 ‘시즌2’를 예고했다.

남는 쌀 3배 늘고 매년 1조원 들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초과 생산된 쌀의 시장격리를 의무화한 게 핵심이다. 현행법상 정부는 쌀 생산량이 예상 수요량의 3% 이상이거나 가격이 전년 대비 5% 넘게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 한도 내에서 쌀을 매입할 수 있다. 정부가 초과 생산량 중 얼마를 사들일지에 대해 재량권이 있다.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예상 수요량보다 3~5% 이상 많거나 또는 가격이 전년 대비 5~8%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 전량을 정부가 쌀 초과 생산량을 전량 의무 매입하도록 했다. 정확한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정부가 3~5%(생산량), 5~8%(가격) 구간 내에서 시행규칙으로 정하게 했다. 정부의 재량권을 없애고, 대신 스스로 어느 수준을 넘으면 의무매입할지를 해당 구간 내에서 선택하게 했다.

민주당은 이는 3% 이상 초과 생산, 5% 이상 가격 하락시 의무매입할 것을 규정했던 원안에 비해 정부 재량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초과 생산량에 대한 시장격리(정부매입)를 의무화하면 쌀값을 안정화시키고, 식량자급율을 높여 식량안보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이 제시한 명분이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의무매입이 쌀값 안정도, 농업 발전도, 식량안보도 챙길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개정안 원안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시장격리를 의무화했을 경우 밀, 콩 등 다른 작물 재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더라도 쌀 초과 공급량이 올해 22만6000t에서 2030년 63만1000t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과 공급량이 늘면서 올해 80kg에 18만원 수준인 산지 쌀값도 2030년 17만2000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쌀 의무매입에 들어가는 비용도 막대하다. 농경연은 격리 의무화를 위해 투입되는 예산이 올해 5737억원에서 2030년 1조4659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030년까지 연평균 1조303억원이 투입된다. 정부가 매입한 쌀은 보관 기한(3년)후 매입가 10~20% 수준의 헐값에 주정용·사료용 등으로 팔린다. 투입된 예산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중분해되는 셈이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쌀 의무매입이 현실화되면 돈은 돈대로 들고 정작 쌀값이 떨어져 농가에게 되려 손해가 될 것”이라며 “연 1조원이면 청년 수천 명이 일할 1만㎡짜리 대형 스마트팜을 매년 300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尹정부 식량안보정책 유명무실해져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이 그간 야심차게 추진하던 식량안보 정책의 기초를 무너뜨릴 것이라 보고 있다. 정부는 쌀에 치우친 농업 포트폴리오를 밀, 콩, 가루쌀 등 대체작물로 다변화시키기 위해 전략작물직불제란 인센티브 제도를 내놨다. 논에 벼 대신 이들 대체작물을 심으면 ha당 매월 최대 25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로, 이를 통해 각각 1%, 25%에 불과한 밀과 콩의 자급률을 2027년까지 각각 7.9%, 4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이 정책도 유명무실해진다. 농경연은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2027년 밀과 콩의 자급률은 각각 4%, 26.4%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은 기계화율이 99.3%에 달해 다른 작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손이 덜 들어간다”며 “얼마를 생산하든 정부가 모두 사준다고 하면 애써 다른 작물을 심을 유인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양곡관리법 개정을 막겠다고 밝혔다. 거부권은 행정부가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한 대통령의 헌법상 권리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가 의원들이 과반수 출석한 가운데 3분의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민주당 단독으론 처리가 불가능한 구조다.

민주당은 이미 양곡관리법의 최종 관철시키기보단 대안 입법으로 또 다른 입법 투쟁에 나설 것을 예고한 상태다. 22일 민주당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식량자급률 법제화와 쌀 재배면적 관리 의무화 등 대체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