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 더 뮤지컬’에서 클레페 역을 맡은 배우 제시카 나일즈(맨 왼쪽)가 극중 넘버 ‘겟 다운(Get down)’을 부르고 있다.   /클립서비스 제공
‘식스 더 뮤지컬’에서 클레페 역을 맡은 배우 제시카 나일즈(맨 왼쪽)가 극중 넘버 ‘겟 다운(Get down)’을 부르고 있다. /클립서비스 제공
여섯 명의 왕비가 저마다 죽은 남편을 욕한다. 남편은 모두 같은 사람. 16세기 영국의 절대 군주 헨리 8세다. 헨리 8세의 전 부인들은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짜릿한 고음을 내지르며 ‘한풀이’ 노래를 한다. 누군가 이혼당한 설움을 노래하자 누군가는 참수당한 억울함을 쏟아낸다. 애처롭고 음울한 자리여야 마땅하겠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흥겨운 분위기에 웃음과 환호가 끊이지 않는다. 여섯 왕비가 팝스타로 변신해 끊임없이 무대를 달아오르게 하면서다.

콘서트처럼 즐길 수 있는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이 마침내 국내 공연의 첫발을 뗐다. 영국 현지 오리지널 캐스팅 배우들의 무대를 통해서다. 이들의 무대는 오는 31일 개막을 앞둔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에 대한 기대를 크게 높였다.

○젊고 발칙한 상상력이 가득

‘식스 더 뮤지컬’ 오리지널 버전은 26일까지 서울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열린다. 2019년 ‘영국의 뮤지컬 허브’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선보인 뒤 이듬해 미국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작품이다. 지난해 세계적 권위의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음악상과 최우수 뮤지컬 의상디자인상 등을 받았다. 한국에서의 공연이 비영어권 첫 무대다.

뮤지컬은 역사의 뒤편에 가려졌던 헨리 8세의 전 부인 여섯 명에게 마이크를 건넨다. 헨리 8세는 약 500년 전 자신의 이혼을 위해 종교 개혁까지 단행하는 등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다. 그는 이야기의 구심점이지만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아라곤, 불린, 시모어, 클레페, 하워드, 파 등 실존했던 여섯 왕비가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삶을 노래로 이야기한다. 목이 잘려 죽는 등 헨리 8세 때문에 기구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왕비들이 노래와 춤으로 ‘누가 더 불행한지’를 겨룬다.

뮤지컬의 핵심은 음악이다. 대사가 거의 없이 음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다. 팝 음악 위주로 구성된 넘버(노래) 열 개로 내용을 알려준다. 이들 넘버가 담긴 브로드웨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캐스트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각각의 왕비 캐릭터와 서사가 담긴 여섯 개의 넘버에선 한 명이 리드보컬을 맡고 나머지 다섯 명이 코러스를 한다. 아라곤의 캐릭터는 팝스타 비욘세 등에게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다른 왕비들도 각각 아델, 니키 미나즈, 얼리샤 키스 등 대중적으로 친숙한 가수를 연상케 한다. 배우들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공연하기 때문에 안무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뛰어난 가창력으로 갈음이 된다.

젊은 창작진의 작품이어선지 무대 분위기가 밝고 재기발랄하다. 극본을 쓴 토비 말로우와 루시 모스는 1994년생 동갑내기이자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문이다. 헨리 8세가 신붓감을 구하는 과정을 데이팅 앱에 비유한 연출이나, 종교 개혁보다 본인이 더 ‘핫(hot)’하다는 가사 등 발칙하고 참신한 발상이 가득하다.

러닝타임 80분간 여섯 왕비의 뚜렷한 개성을 촘촘하게 표현한다. 공연 도중에 시계를 볼 틈이 없다. 마지막 여섯 번째 왕비 파의 목소리는 작품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섯 명의 여성이 헨리 8세의 아내란 유일한 공통점으로 묶여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남편과 분리돼 본인 자체의 정체성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외침인 것. 실제로 파는 영국에서 자신의 이름과 영어로 책을 출판한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오는 31일 한국어 공연 개막

내한 공연의 막이 내린 뒤 31일부터는 국내 배우들로 꾸린 한국어 공연이 개막한다. 무대와 의상 모두 오리지널 공연 그대로다. 라이선스 공연의 성공 여부는 ‘번역이 제대로 되느냐’에 달렸다. 작품이 담고 있는 여성주의적 메시지와 팝 멜로디는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췄지만, 자연스러운 한국어 가사로 변환이 가능할지가 궁금하다. 영화 ‘데드풀’ 번역 등으로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 번역가 중 한 명인 황석희가 번역을 맡았다.

오리지널 공연과 비교해 한국 배우들이 펼칠 역량도 기대된다. 한국어 공연은 모두 더블캐스팅됐다. 아라곤 역은 손승연·이아름솔, 불린 역 김지우·배수정, 시모어 역 박혜나·박가람, 클레페 역 김지선·최현선, 하워드 역 김려원·솔지, 파 역은 유주혜·홍지희 등이 연기할 예정이다. 콘서트처럼 흥겹게 즐기는 뮤지컬을 원하는 관객이 선호할 만한 작품이다. 한국어 공연은 6월 25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