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내 예금만 무탈하면 괜찮은걸까
기자의 아내가 며칠 전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A은행에 넣은 정기예금 중 예금자보호 한도(5000만원)를 넘긴 일부를 딴 곳으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유럽에 있는 크레디트스위스(CS)마저 매각됐다는 ‘험악한’ 뉴스를 보고 나서다. 영혼 없는 대꾸가 이어졌다. “여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A은행은 쓰러지지 않아. 걱정 마.” 뒷맛은 영 개운치 않았다. 평범한 자영업자인, 경제 뉴스에 둔감한 편인 아내가 은행 예금도 거덜 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걸 확인하면서다.

갑자기 등장한 예금전액 보호

문득 10여 년 전 은행권을 출입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2011년부터 2년간 솔로몬저축은행 등 20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때다.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가 끊이지 않았다. 2012년 표심을 노린 국회는 이른바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급조해냈다. 문을 닫은 저축은행의 5000만원 이상 초과 예금자의 피해액 중 55%를 물어주자는 게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예금자보호법을 무력화시키는 조치였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온몸으로 법안 통과를 막아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은행에 맡긴 돈이 무탈한지 다시 걱정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은행발(發) 위기가 시작되자 미국 정부의 조치는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놀랍게도 예금자보호 한도(25만달러)를 넘어선 예금 전액 지급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파장이 일자 포괄적 보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다시 둘러대긴 했다).

더 놀라운 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반응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게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한술 더 떠 일부 의원은 현행 5000만원인 예금자보호 한도를 1억원까지 늘리고, 필요에 따라 미국처럼 예금 전액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 발의에 들어갔다.

"시장 근간 흔들릴 것"

예금자보호 한도를 늘리는 방안은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 국내 예금 규모가 커진 데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보호 한도 자체가 워낙 작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예금 전액 보호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법과 제도,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다. 전액 보장은 사실상 ‘정부 예금’을 뜻한다. 마켓의 기능을 부정하는 짓이다. 예금자들에겐 잘못된 신호를 준다. 다들 금융회사의 부실 여부를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이자를 더 챙겨주는 곳에 몰려들 게 뻔하다.

다수의 소액 예금자를 보호한다는 사회적 취지에도 크게 어긋난다. 은행에 5000만원 넘는 예금을 보유한 고객 비율은 고작 2% 정도에 불과하다. 모든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선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고 결국 재정까지 투입해야 한다. 혈세를 들여 금융사를 살리고, 특정 예금자의 돈을 메워준다는 논란에 맞닥뜨려야 한다. 뒷감당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정부와 정치권은 시장 실패를 막고 위험을 관리해야지, 국가 시스템을 위기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덜컥 떠안으면 안 된다. 부디 은행에 맡긴 내 돈도, 나랏돈도 모두 무탈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