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경직된 주 52시간 근로제에서 납기를 맞추려면 형사처벌까지 각오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주 69시간 근로’라는 극단적 프레임에 휘말려 정부의 근로시간제 개편이 좌초 위기를 맞은 가운데 유연한 근로시간 확보를 촉구하는 중소기업 전문가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23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근로시간제도 개선 방향’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이동근 경총 부회장과 정윤모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김대환 일자리연대 상임대표,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황인환 한국전기차인프라서비스사업협동조합 이사장, 김강식 한국항공대 교수 등이 참석해 근로시간제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동근 부회장은 “연장근로의 단위 기간을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운영하는 것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 간 합의와 근로자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노동계는 제도 개선의 취지를 왜곡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윤모 부회장은 “근로시간 개편안은 중소기업의 불규칙한 연장근로 대응과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제 개선안에 관한 오해를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민선 연구위원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주 69시간 근무’를 지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황인환 이사장은 “중소기업은 주문이 몰릴 때 납기를 맞추려면 추가 연장근로가 불가피한데 현행 주 52시간제로는 시장 요구를 따라가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노 연구위원이 제시한 각종 근로시간 관련 데이터는 ‘초장기 근로’에 대한 공포가 과장됐음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가 시행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의 주 평균 연장근로는 1.8시간에 불과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원시데이터 분석 결과도 주업과 부업을 포함해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근로자 비중은 2018년 11.9%에서 지난해 6.2%로 감소했다.

경직된 근로시간의 부작용은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중소기업 인력난이다. 고용부의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미충원 인원은 2018년 하반기 7만 명에서 주 52시간제가 정착된 지난해 하반기 17만 명으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김강식 교수는 “근로시간제도는 노사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