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 공분 산 '제주 4·3 왜곡 현수막' 곳곳서 훼손(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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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60대 남성 용의자 특정해 조사 예정
제주4·3을 '김일성 공산폭동'으로 왜곡한 일부 정당 현수막이 잇달아 훼손됐다.
또 해당 현수막을 전면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도 등장하는 등 도민사회 내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24일 자유논객연합 등에 따르면 '제주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내용의 현수막 80여 개 중 10여개가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찢어지거나 사라졌다.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등 4개 정당과 자유논객연합 명의로 돼 있는 이 현수막은 지난 21일 게시됐다.
현수막 훼손은 왜곡된 내용에 대한 도민 사회 공분이 표현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몇몇 마을은 '4·3 왜곡 현수막이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생존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마을회 차원에서 인근에 설치된 4·3 왜곡 현수막을 철거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제주시 을)은 이 현수막 위에 '4·3영령이여, 저들을 용서치 마소서. 진실을 왜곡하는 낡은 색깔론, 그입 다물라!'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을 내건 단체 측은 이날 도내 각 경찰서를 찾아 현수막 훼손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앞서 서귀포경찰서는 전날 오후 60대 남성 A씨를 현수막 훼손 용의자로 특정했다.
A씨는 26일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로 했다.
A씨는 경찰과의 전화 통화에서 '도내에 내걸린 4·3 왜곡 현수막 10개 가량을 커터칼로 훼손했으며, 훼손 사유는 출석 조사에서 밝히겠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했으며, 조사 후 혐의가 변동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4·3은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대회에서의 경찰 발포 사건과 이어진 경찰의 과도한 검거 작전 등이 도화선이 됐다.
또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무장봉기는 남로당 중앙당 지시 없이 남로당 제주도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4·3은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과 3·1절 발포사건 이후 비롯된 경찰·서북청년단과 제주도민과의 갈등, 그로 인해 빚어진 긴장 상황을 남로당 제주도당이 (단독으로) 5·10 단독선거 반대 투쟁과 접목해 일으킨 사건으로 판단했다.
dragon.
/연합뉴스
제주4·3을 '김일성 공산폭동'으로 왜곡한 일부 정당 현수막이 잇달아 훼손됐다.
또 해당 현수막을 전면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도 등장하는 등 도민사회 내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24일 자유논객연합 등에 따르면 '제주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내용의 현수막 80여 개 중 10여개가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찢어지거나 사라졌다.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등 4개 정당과 자유논객연합 명의로 돼 있는 이 현수막은 지난 21일 게시됐다.
현수막 훼손은 왜곡된 내용에 대한 도민 사회 공분이 표현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몇몇 마을은 '4·3 왜곡 현수막이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생존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마을회 차원에서 인근에 설치된 4·3 왜곡 현수막을 철거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제주시 을)은 이 현수막 위에 '4·3영령이여, 저들을 용서치 마소서. 진실을 왜곡하는 낡은 색깔론, 그입 다물라!'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을 내건 단체 측은 이날 도내 각 경찰서를 찾아 현수막 훼손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앞서 서귀포경찰서는 전날 오후 60대 남성 A씨를 현수막 훼손 용의자로 특정했다.
A씨는 26일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로 했다.
A씨는 경찰과의 전화 통화에서 '도내에 내걸린 4·3 왜곡 현수막 10개 가량을 커터칼로 훼손했으며, 훼손 사유는 출석 조사에서 밝히겠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했으며, 조사 후 혐의가 변동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4·3은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대회에서의 경찰 발포 사건과 이어진 경찰의 과도한 검거 작전 등이 도화선이 됐다.
또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무장봉기는 남로당 중앙당 지시 없이 남로당 제주도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4·3은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과 3·1절 발포사건 이후 비롯된 경찰·서북청년단과 제주도민과의 갈등, 그로 인해 빚어진 긴장 상황을 남로당 제주도당이 (단독으로) 5·10 단독선거 반대 투쟁과 접목해 일으킨 사건으로 판단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