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체류 자격' '지원사업 참여 배제' 개선 시급
"韓 예술에 자극 주고, 다양성 강화 역할 하게 해야"

이달 10일 공개된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가 2주 연속 넷플릭스 TV 부문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콘텐츠가 이처럼 세계인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건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예술 이주민 리포트] ③그들의 꿈이 실현되면…"K컬처 다양성도 확장"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위상이 역대 최고라고 할 만큼 높아졌고 K컬처에 반해 새로운 '코리안드림'을 좇아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환경은 여전히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주예술인의 처우 개선과 권리 증진이 결국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배성희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예술의 속성에 따라 결합을 통해 무궁무진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도 있으며 함께 작업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면서 "이주예술인은 우리나라 예술인을 더 자극하고 건강하게 하는 파수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에서 이주예술인은 어떤 존재인가
이주예술인들은 예술 분야 발전에서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존재 가치를 온전히 평가해 달라고 호소한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2009년 귀화한 섹 알 마문 영화감독은 "다른 하나와 또 다른 하나가 만나서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하며 발전하는 것이 바로 문화이자 예술"이라며 "이주예술인들이 궁극적으로 한국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예술 이주민 리포트] ③그들의 꿈이 실현되면…"K컬처 다양성도 확장"
그는 "한국 예술인이 여러 나라로 떠나 배우고 체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겠느냐. 우리(한국인)끼리만 있으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다"며 "이주예술인만이 볼 수 있고 생각하고 창작할 수 있는 게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여전히 한국인만이 문화 생산의 수혜자라 보는 인식 탓에 이주민은 예술 활동을 해도 해당 사업에 그냥 끼어들어 갈 뿐 주체자가 되긴 힘들다"며 "이주민이 예술가로서 당사자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관해 논의가 이뤄지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문화 강국이라고 자평하고, 문화 산업이 확장한다고 해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주예술인으로 대변되는 다양성 강화에 대한 개념이 없다"며 "다른 문화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인식을 위해 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주예술인에 대한 인식은 예술 분야 정부 정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주요 문화예술기관의 공모사업 대상이 '대한민국 국적자'로 한정하고 있어 상당수 외국인은 이런 사업에 지원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이주예술인의 지위를 재규정하고 이들을 둘러싼 관련 제도를 문화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배성희 조사관은 "프랑스와 독일, 영국, 스위스, 네덜란드, 미국 등 문화 선진국에서는 예술인을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우리도 (관련법상) 예술인의 정의를 사회 구성원이나 국내에 있는 모든 이로 바꿔야 한다"며 제언했다.

사회적기업 다문화극단 '샐러드'의 박경주 대표는 "예술인 지원 시스템 등을 소관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이트에는 영어로도 내용이 소개된 곳이 전무하다"며 "사실상 이주예술인은 소관하지 않겠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 "소속사에 좌지우지되는 체류 자격"…비자 제도 개선해야
[예술 이주민 리포트] ③그들의 꿈이 실현되면…"K컬처 다양성도 확장"
이주예술인의 안정적인 활동을 막는 큰 걸림돌은 바로 그들의 국내 체류 여부가 소속사에 전적으로 달린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령 소속사가 계약된 외국인에 대한 고용 해지를 먼저 할 경우, 소속사 측에 부당 계약이나 임금 체불 등의 귀책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지은 법률사무소 리버티 변호사는 "이주예술인 대부분이 사회 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젊은 층인 만큼 기획사의 갑질을 입증하기도 어렵다"며 "여기에 자영업자 개념이 강한 프리랜서라는 예술인 특성상 최소한의 노동권 보장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킨 기획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시행해서 일부 악덕 기획사로부터 상처받는 이주예술인이 더 나오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만익 비자 행정사도 "E6(예술흥행)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뒤 추천을 받아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법무부의 최종 승인도 받아야 한다"며 비자 취득 과정의 험난함을 지적했다.

이주예술인들이 소속사와 맺은 계약에 독소조항 등이 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영어 계약서를 병행하는 것을 의무화하거나 공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원단체를 연결해주는 등 관련 부처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 행정사는 "고국에서부터 한국에 입국할 때까지 노동법과 근로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거치는 이주노동자와는 달리 이주예술인은 이런 과정이 없는 탓에 관련 노동법규에 무지한 상태"라며 "게다가 수십만명에 이르는 고용허가제 입국자와 비교해 이주예술인은 소수에 불과해 결속력도 떨어지고 의지할 곳도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1월 기준 국내에 체류하는 고용허가제(비전문취업·E9) 근로자는 26만6천여명인 데 비해 E6 소지자는 3천883명에 불과하다.

◇ 법무부 "관계부처와 협업해 제도 개선 검토 방침"
[예술 이주민 리포트] ③그들의 꿈이 실현되면…"K컬처 다양성도 확장"
최근에는 국내 예술활동을 해온 외국인들이 스스로 기획사를 세우기도 했다.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와 미국 출신 타일러 라쉬는 이달 초 연예 기획사 '웨이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러시아 출신 귀화인인 벨랴코프 일리야와 브라질 출신 카를로스 고리토 등 외국인 방송인 9명이 소속됐다.

웨이브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운영의 투명성이 부족했던 다른 기획사와 달리 체계화된 시스템을 만들어 (출연료나 급여) 정산 자료나 계약 과정 등을 소속 연예인과 공유하고 언제든 조회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예술 분야 유학생이 관련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비자 취득의 문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도균 제주 한라대 특임교수(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는 "예술대학을 졸업한 유학생이 무대나 조명, 음향, 분장 등 전반적인 예술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E6만이 아니라 E7(특정활동)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예술 분야 이주민이 전문 지식을 활용하고 다양한 예술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시대 변화에 따른 다양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이주예술인 관련 체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체류관리과 관계자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부당한) 고용관계나 소득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어려움, 언어장벽과 국내 제도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한 피해, 기타 인권침해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해 문체부 등 관계부처와 협업해 제도 개선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일부 기획사의 불합리한 처우로 기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예술인들이 없도록, 상반기 안에 외국인 연예인을 고용한 기획사와 에이전시를 대상으로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글 싣는 순서
①제2의 '블랙핑크 리사' 꿈꾸며…그들이 몰려온다
②부푼 꿈 안고 왔지만…부당대우에도 가슴앓이만
③그들의 꿈이 실현되면…"K컬처 다양성도 확장"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