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오스틴CC(파71) 17번홀. 로리 매킬로이(34·북아일랜드)가 그린 주변 러프에서 친 두 번째 샷이 핀 1.2m 옆에 멈췄다. 티샷을 그린에 잘 올린 잰더 쇼플리(30·미국)의 버디 퍼트도 역시 핀을 1.2m 남겨두고 섰다. 동점으로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비슷한 거리의 퍼트만 남겨둔 순간, 매킬로이와 쇼플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델 테크놀로지스 매치플레이(총상금 2000만달러) 8강전에서 역대급 승부가 펼쳐진 순간이다. 세계랭킹 3위 매킬로이와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쇼플리가 그 주인공.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 잔인한 매치플레이에서 둘은 마지막 홀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17번홀까지 동점을 이어간 8강전은 마지막 홀에서 매킬로이가 버디를 잡아내고서야 마무리됐다.

경기 초반은 쇼플리의 시간이었다. 첫 홀 버디로 먼저 승점을 따낸 쇼플리는 7번홀(파3) 버디로 2점차까지 달아났다. 하지만 곧바로 매킬로이의 반격이 시작됐다. 8번홀(파4)과 10번홀(파3) 버디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7번홀까지 매킬로이와 쇼플리는 각각 버디 7개와 보기 1개를 몰아치며 피 말리는 접전을 펼쳤다.

둘의 운명을 결정짓는 18번홀에서는 장타자 매킬로이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티샷을 334야드 보낸 뒤 두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 위 핀에서 4m 거리에 올렸다. 반면 쇼플리는 두 번째 샷이 그린 왼편 러프에 멈춰 투온에 실패했다. 매킬로이가 버디 퍼트를 잡아냈지만 쇼플리는 칩인 버디에 실패하면서 파에 그쳤다. 마지막 홀까지 이어진 피 말리는 승부 끝에 매킬로이가 가까스로 웃은 장면이었다. 매킬로이는 경기가 끝난 뒤 “쇼플리는 세계 최고 선수라서 잘해야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내가 운이 조금 더 좋았다”고 말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27·미국)도 이날 J T 포스턴(30·미국)과 제이슨 데이(36·호주)를 연달아 꺾으며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결승에서 매킬로이와 셰플러의 정면승부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매킬로이가 준우승에서 세계랭킹 17위 캐머런 영(26·미국)을, 셰플러가 동갑내기 절친인 랭킹 15위 샘 번스(미국)를 꺾으면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와 3위의 맞대결이 성사된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