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직전의 건축물, 추상화가 되다
건축은 생활공간을 만드는 공학인 동시에 눈으로 보고 즐기는 예술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 권위의 예술전인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1980년부터 미술전과 건축전을 번갈아 열고, 적잖은 국내외 대학이 건축학과를 공과대학이 아니라 미술대학 소속으로 분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건축물은 그림이나 조각 등 일반적인 예술품과 좀 다른 취급을 받는다. 가장 큰 차이가 ‘쓸모를 다하면 철거된다’는 것이다.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 셰자드 다우드(49)는 이 점에 주목했다.

다우드가 철거를 앞둔 세계 각지의 건축물을 그린 회화 15점을 선보이는 개인전 ‘인터그레이션’이 서울 삼청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인도와 파키스탄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영국 이민자 2세대로, 201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2021년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인 세계적 현대미술가다. 국내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2018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전시장에서는 모로코, 캄보디아, 이란, 인도, 일본 등 여러 국가의 여러 건물을 묘사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인도 아메다바드경영대학원 건물을 소재로 한 ‘웬 루이스 멧 아흐메드’(사진)다. 1974년 준공된 이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 루이스 칸(1901~1974)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지만, 대학원 측이 캠퍼스 재건축 계획의 일환으로 철거 계획을 세우면서 세계 건축계에 걱정거리를 안긴 건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건물의 모습을 일부 변형해 황마(黃麻) 소재의 직물 위에 그렸다.

건축에 큰 관심이 없다면 처음 보는 외국 건물을 그린 반추상화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각각의 작품이 표현하는 건물에 얽힌 스토리를 알고 보면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작품과 작가의 의도에 따라 벽마다 칠한 형광색, 갤러리 내부의 디자인과 채광이 어우러져 ‘건축은 예술’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전시다. 오는 4월 23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