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 그레그 베커 실리콘밸리은행(SVB) 최고경영자는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은행 재정을 강화하기 위해 21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각했고 이로 인해 18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SVB 위기설의 점화였다. 다음날 보험 스타트업인 커버리지캣 설립자 맥스 조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을 때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동료 창업자들이 모두 미친 듯이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른바 ‘뱅크탭’이었다.

3월 10일 주말을 앞두고 SVB 주가는 이틀 연속 60% 넘게 폭락했다. 미국 금융당국은 결국 SVB를 폐쇄했다. 미국과 유럽 금융당국자들은 주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블랙 먼데이’를 막기 위해서였다.

닷새 뒤인 3월 15일 위기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번졌다. 잇따른 스캔들과 위험 투자로 오랫동안 위기설이 나돈 크레디트스위스(CS)의 주가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에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일요일인 19일 CS는 결국 UBS에 인수됐다. 딜은 초고속으로 타결됐다. 또 다른 블랙 먼데이를 막기 위해 스위스 금융당국이 나선 결과였다.

그리고 지난 주말. 시장은 다음 희생양을 찾았다. 도이체방크다. 24일 도이체방크 은행채의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한때 220bp(1bp=0.01%포인트) 이상으로 치솟았다. 2018년 이후 최고치다.

왜 도이체방크인가. 재무적으로 탄탄하고 뱅크런도 없었다. 코코본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험 노출 등 때문이란 얘기가 나왔지만 주가 폭락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한 분석이 눈에 띄었다. 주말을 앞두고 뭔가 터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란 분석이다. 주말이기 때문이라니. 어찌 보면 황당한 이런 분석은 시장에 깔린 공포감의 깊이를 보여준다.

19세기 말 프랑스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저서 <군중심리학>에서 군중심리는 이성적 추론보다 감염으로 전파된다고 했다. 군중심리는 금융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이번 위기를 촉발한 뱅크런이 대표적이다. 공포감이 가라앉지 않는 한 은행 위기는 계속될지 모른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