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 중국 총리의 보아오포럼 개막식(30일) 기조연설 현장. 기자석은 리 총리가 이렇게 작게 보일 정도로 연단에서 떨어져 있었다. 강현우 기자
리창 중국 총리의 보아오포럼 개막식(30일) 기조연설 현장. 기자석은 리 총리가 이렇게 작게 보일 정도로 연단에서 떨어져 있었다. 강현우 기자
중국이 4년 만에 개최한 대규모 국제 행사인 보아오포럼에서 가장 관심을 끈 이벤트는 30일 있었던 리창 총리의 기조연설이었다. 3년간의 '제로 코로나'로 무너진 중국 경제를 이끌 사람이 리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창 총리의 기조연설 현장에 외국 매체는 일부만 들어갈 수 있었다. 주최 측은 외국 기자는 별도로 마련한 프레스센터에서 녹화한 영상을 보여주겠다는 방침이었다. 항의가 이어지자 전날 오후에서야 일부 매체를 선별해 개별적으로 입장이 가능함을 통보했다.

이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공식 출범한 시진핑 3기 집행부는 '대외 개방'을 줄기차게 내세우고 있다. 고위층발전포럼(25~27일)과 보아오포럼(28~31일)에는 글로벌 기업인들을 대거 초청했다. 시 주석은 발전포럼 축사에서 "대외 개방의 기본 국책을 견지하고 개방 전략을 확고히 실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리 총리도 이날 기조연설에서 개방을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경제가 안정적이라고 하지만, 경기를 부양할 실탄이 부족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외국인 투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중국이 보아오포럼이 진행 중인 지난 28일 광둥성에서 ‘중국 투자의 해’라는 행사도 열었다는 걸 봐도 다급함을 느낄 수 있다.

중국 투자의 해라는 행사는 올해 처음 열렸다. 허리펑 부총리가 나서 삼성, 바스프 등 30여개 글로벌 기업들에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부총리급 인사가 비공개로 외국 기업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드물지 않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투자 유치 활동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런 말이나 행사들과 달리 실제 행동을 보면 개방 의지가 진짜로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보아오포럼 행사장은 10㎞ 밖에서부터 차량 출입을 통제했다. 일반 청중이나 기자에 배정한 호텔도 행사장에서 수 킬로미터 거리였다. 주최 측이 제공한 셔틀버스로만 이동할 수 있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중국 금융당국은 최근 외국인 투자자에게 제공하던 채권 거래 정보 서비스를 갑자기 중단해 글로벌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뜨리기도 했다. 수일 후 다시 정보를 공개하긴 했지만 중단이나 재개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외국인 투자자의 중국 채권 순매도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이유로 추정된다. '제로 코로나' 통제에도, 미국과의 디커플링(탈공조화) 흐름 속에서도 외국인 투자가 계속 늘어난다는 게 중국의 주장이다.

중국공산당의 민간기업 통제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수개월 동안 외국을 떠돌다 며칠 전 귀국했다. 그의 복귀 역시 당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후문이다. 외국인의 신뢰 회복을 위한 선전전의 일환이라는 얘기다.

중국과 주요 2개국(G2)을 이루는 미국은 어떨까. 조 바이든 대통령이 끊임없이 말실수를 하지만 주요 연설은 생중계 방침을 유지한다. 걸핏하면 ‘비공개’를 내거는 중국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3년간의 ‘제로 코로나’ 통제로 중국에 대한 외국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확진자 사망자 축소, 묻지마 격리 등은 ‘무결점’을 추구하는 공산당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냈다. 중국이 미국을 이기려면 적어도 미국 수준의 투명성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보아오=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