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석가리기 분주한 삼성…'제2의 모더나' 찾을 수 있을까 [남정민의 붐바이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물산의 라이프사이언스펀드 3번째 투자처가 이르면 이달 안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원래 3월까지 딜을 마무리하고 발표할 계획이었는데 계약서 문구 검토 등으로 조금 늦어졌습니다.

라이프사이언스펀드, 그리고 최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별도로 출자한 펀드까지 합치면 삼성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총 1700억원 규모의 바이오 투자 자금이 굴러가게 됐습니다. 일명 ‘제2의 모더나 찾기’ 프로젝트인데, 외부에 공개된 펀드만 이 정도이고 물밑 경쟁은 더욱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자목적은 ‘신사업 기회 발굴’입니다.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것도 있지만 신약 개발 사업까지 염두한 결정으로 풀이됩니다. 일각에선 “보다 통큰 움직임도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글로벌 CDMO는 이미 M&A '활발'

2021년 꾸려진 라이프사이언스펀드는 지금까지 재규어진테라피(유전자치료제)에 150억원, 센다바이오사이언스(나노입자 약물전달)에 2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이번 세번째 투자처는 해외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투자도 앞선 사례와 비슷한 소규모 투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형 투자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혹자는 150억원, 200억원이 어떻게 소규모냐고 말할 수 있지만 삼성이라는 기업의 덩치를 감안하면 그렇다는 평가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내년 1분기 ADC 생산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CDMO 기업이기 때문에 ADC 의약품을 직접 개발하는 것은 아니고, 고객사의 ADC 의약품을 위탁생산하려는 것이죠. 현재 ADC 생산설비를 짓고 있는데 인천 송도 제1캠퍼스(1~4공장)나 제2캠퍼스(5~8공장)와는 별도로 짓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DC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해 다양한 기업들이 진출 선언을 한 분야입니다. 셀트리온은 영국 ADC 개발기업 익수다테라퓨틱스에 530억여원을 투자했고 종근당은 1650억여원을 들여 네덜란드 바이오텍 시나픽스와 플랫폼 도입 계약을 맺었습니다.

ADC는 최근 글로벌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술입니다. 유도미사일처럼 타깃하는 위치에 약물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죠. 암세포에 정확히 항암제를 전달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좋고 정상세포를 망가뜨리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CDMO들은 아예 인수합병(M&A)을 진행하며 ADC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전통 강자’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은 이미 2020년 ADC 항암제를 개발하는 스위스 NBE쎄러퓨틱스를 15억달러(약1조95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ADC뿐만이 아닙니다. 글로벌 CDMO 시장에서 차세대 바이오 플랫폼 확보를 위해 기업간 M&A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국 론자는 2021년 코디악바이오의 엑소좀 생산시설을 6500만 달러(약 845억원)에 사들여 세포·유전자치료제 시장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미국 카탈런트는 2019년 유전자 CDMO 기업 파라곤바이오서비스를, 2020년 세포치료제 기업 본테라퓨틱스의 생산시설을 인수했고요, 써모피셔는 2021년 노바셉 생산사업부문을 인수했습니다.

설립후 12년간 M&A 0건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행보는 글로벌 CDMO 경쟁사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기술 확보를 위한 과감한 M&A에는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신약개발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00%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바이오시밀러에 머물지 않고 신약개발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삼성의 신약 도전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죠. 고부가가치 신약 사업에 진출할 생각이 있다면 통큰 투자를 단행해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꾸준히 나오는 배경입니다.
물론 CDMO만 해서도 돈을 벌 수 있죠. 하지만 언제까지 좋은 비즈니스 구조라고 말할 수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 바이오 '신사업'에 대한 그룹 차원의 의지가 있는건지 의심스럽습니다.

M&A를 하면 고객사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추후 분리해서 삼성물산 밑에 두거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밑에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실무진들은 그런 준비는 다 돼있을겁니다. 그룹 차원에서 사인만 주면 할 수 있는 단계라고 봅니다.

-투자업계 관계자
M&A를 하는건 어디까지나 회사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제2의 모더나는 ‘찾으라’는 지시만 있다고 해서 찾아지는 게 아닙니다. 그 지시를 뒷받침할 결단력과 속도감이 필요합니다.

돌다리를 두드리며 검토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연장을 바꿔가며 두드리는 수준이라는 우스갯소리도 그룹 안팎에서는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제2의 모더나를 먼저 가로채갈지도 모릅니다. 신약 사업에서 성과를 내려면 그룹 차원의 큰 보폭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입니다. 제2의 모더나를 찾는 것만큼이나 제때 사는 것, 제때 시너지를 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