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가 존경"…고흐도 추앙한 노인 정체 알고보니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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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인상주의 화가·작곡가들에 큰 영향
19세기 대량 생산 판화로 큰 인기
'만화'란 단어 처음으로 쓰기도
!["일본 화가 존경"…고흐도 추앙한 노인 정체 알고보니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30.1.jpg)
![호쿠사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대량 생산된 판화인데도 지난달 2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6억4000만원에 낙찰되는 등 높은 가치를 자랑한다. 작은 배에서 웅크린 사람들, 파도 끝부분의 세부 표현에 주목해 보자.](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32.1.jpg)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역대 최고의 일본 화가. ‘만화’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이자 과거 1000년 새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 꼽힌 유일한 일본인(라이프지, 1998년). 자신을 ‘그림에 미친 노인’이라 부르며 평생 3만점 이상의 작품을 그렸고, 한편으로는 기행을 일삼았던 괴짜.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호쿠사이의 삶과 작품을 풀어 봤습니다.
문화 꽃 필 때 나타난 ‘괴짜 천재 화가’
!['도카이도 시나가와의 고텐야마 언덕'. 지금도 이곳은 벚꽃 명소로 꼽힌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52.1.jpg)
아무튼 이 도쿠가와 가문이 일본을 실질 통치한 1603~1868년을 ‘에도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 일본은 급격한 상업화를 겪었습니다. 도자기와 판화, 각종 귀금속을 유럽에 수출하고 네덜란드 등지에서 새로운 문화를 들여온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도시에는 사람이 몰렸고,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중산층들은 극장에도 가고(가부키) 스포츠 경기도 보고(스모) 레저도 즐겼습니다(뱃놀이). 이때 에도의 인구는 무려 100만명에 달했습니다.
!['소슈 나카하라'.](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98.1.jpg)
1760년 에도의 장인 가문에서 태어난 호쿠사이는 6살 때부터 화가의 재능을 보였습니다. 덕분에 19살 때 에도시대 중기를 대표하는 화가 가쓰카와 순쇼(1726~1793)의 제자로 들어갈 수 있었고요. 이때부터 가부키 배우(지금으로 치면 뮤지컬이나 드라마 배우) 등의 초상화를 그렸고, 상인에게 벽보를 그려주며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후지산 등반'.](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4032.1.jpg)
그림밖에 모르는 바보
!['에도의 니혼바시 다리'.](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34.1.jpg)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호쿠사이는 금세 유명해졌습니다. 1817년 축제에서 붓 대신 빗자루를 써서 길이 100m에 달하는 달마도를 그리는 등 ‘끼’를 뽐내기도 했고요. 같은 해 인기 소설가였던 쿄쿠테이 바킨과 함께 같이 책을 내면서 명성은 계속 높아져만 갔습니다. 다만 소설가가 시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그려서 서로 엄청나게 싸웠다고 합니다. 결국 둘은 출판사에 달려가 묻습니다. “우리 둘 중에 누구랑 일할지 한명만 빨리 고르시오.” 출판사가 택한 건 호쿠사이였습니다.
![호쿠사이가 그린 여러 표정의 얼굴. 그림 자체가 재미있어 일반인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콧김을 뿜는 등 만화적 표현이 들어가 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59.1.jpg)
![호쿠사이가 그린 춤추는 모습의 캐릭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53.1.jpg)
![제자가 그린 호쿠사이 집 그림 일부. 실제 집은 엄청나게 더러웠다고 한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61.1.jpg)
돈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보통 화가들보다 작품값을 비싸게 받았지만, 그림값이 와도 돈 봉투(돈주머니)를 열어서 돈을 세보지도 않았습니다. 책상 밑에 놔뒀다가 음식점에서 배달이 오면 음식값으로 대충 꾸러미째 던져 줬지요. “돈 셀 시간 있으면 그림이나 그려야지!” 덕분에 음식점 주인만 횡재했습니다. 돈이 많으면 그대로 받고, 적으면 더 달라고 하면 됐으니까요. 그래서 호쿠사이는 가난했습니다.
!['에도 스루가 거리의 미츠이 상점'.](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40.1.jpg)
죽는 날까지 그리다
!['스루가 지방의 에지리'.](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4031.1.jpg)
지금은 30억원에도 팔리는데, 당시에는 워낙 저렴해서 도자기 포장지 등으로도 쓰였다고 하네요. 서양에 우키요에가 전해진 것도 이런 포장지를 통해서라는 얘기까지 있습니다. 어찌됐든 이 작품들은 서양으로 흘러가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한 다양한 서양 예술 사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호쿠사이 그림과 '괴물 파도'의 실제 모습 비교. /옥스퍼드대학교 유튜브](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83.1.jpg)
1834년에는 ‘부악백경’이란 그림책을 냅니다. 책 말미에 쓴 작가 멘트가 걸작입니다. “나는 여섯살 때부터 여러 가지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지금 보니 70살 전에 그린 건 다 변변찮네. 일흔셋인 지금 간신히 온갖 동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지. 그러니 여든 여섯살엔 지금보다 더 잘 그릴 거고, 아흔살, 백 살엔 더더욱 잘 그릴 거야. 시간이 더 흐르면 내가 그린 그림에선 점 하나, 선 하나가 모두 살아 움직이겠지. 장수의 신이여, 나를 오래 살게 해주면 이 말을 증명하겠다. 그림에 환장한 늙은이 씀.”
!['후카가와의 만넨 다리 아래에서'.](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4025.1.jpg)
![드뷔시의 '바다' 악보 초판본. 음악 자체가 호쿠사이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이처럼 호쿠사이는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4041.1.jpg)
![호쿠사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청명한 아침의 시원한 바람'. 호쿠사이는 후지산을 즐겨 그렸다. 일본을 상징하는 산이기도 하지만, 장수를 상징하는 산이라서 특히 자주 그렸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호쿠사이는 장수를 염원했다. 강렬한 색과 함께 점으로 찍어 표현한 숲의 표현이 일품이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4/01.33053964.1.jpg)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번 기사의 내용은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호쿠사이 부악백경>(호쿠사이 지음, 김동근 옮김)을 참조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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