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과 영서 잇는 3대 고갯길 사연 간직한 옛이야기와 분단 아픔 남아
사연 따라 걷다 보면 코끝에 봄 내음…소멸 막고자 마을 살리기 한마음
[굽이굽이 별천지] 진부령 고개 넘어 소똥령마을로 봄나들이 가볼까
[※ 편집자 주 =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의 발걸음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듭니다.

강원도의 산과 강, 바다와 호수를 따라 굽이치는 길 끝에는 반짝이는 주민들의 삶이 모여 있습니다.

북적이던 발걸음은 지역소멸이라는 화두와 함께 잦아들고 있지만, 마을은 그 생생함을 되찾고자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갑니다.

길과 마을에 깃든 27개의 이야기를 연합뉴스가 1년 동안 격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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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여 음산한 영마루 새도 넘기 험한 길'(雪嶺參天鳥道危·설령참천조도위)
390년 전 강원도 간성 현감을 지내다 서울로 떠나게 된 이식 선생은 군민들과 이별하면서 넘던 고갯길인 진부령을 시를 통해 이렇게 일컬었다.

추운 겨울 이식 선생과 백성들이 눈물로 아쉬워하던 진부령을 넘어 동쪽으로 길을 따르다 보면 작은 시골 동네 '소똥령마을'을 만난다.

'소똥령'이라는 유별난 이름에 담긴 사연과 진부령이 간직한 옛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굽이굽이 별천지] 진부령 고개 넘어 소똥령마을로 봄나들이 가볼까
◇ 영동·영서 잇는 3대 고갯길 진부령…분단 아픔 간직해
강원 고성군 간성읍과 인제군 북면을 잇는 46번 국도 진부령은 대관령·추가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잇는 3대 고갯길이었다.

이식 선생은 새도 넘기 험한 고개라고 했지만, 사실 다른 고개와 비교하면 진부령은 요새 말로 '순한 맛'이다.

급경사를 반복하는 미시령 옛길이나 마치 협곡을 지나는 것 같은 한계령, 높은 고도를 급경사로 오르내리는 진고개, 급커브가 이어지는 대관령 옛길에 비하면 대체로 동서 모두 완만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

과거 보부상과 장꾼이 넘던 오솔길이었던 진부령은 1930년대 차량이 넘을 수 있는 비포장도로로 보수했고 1987년 왕복 2차선 도로로 탈바꿈했다.

진부령은 한때 가장 빠르게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이었지만, 15년째 금강산 관광이 막히면서 관광객을 맞이하던 식당도 대부분 문을 닫으며 한적해졌다.

거기에 2006년 미시령터널이 뚫리고 10여년 뒤에는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차량 왕래는 더욱 줄었다.

[굽이굽이 별천지] 진부령 고개 넘어 소똥령마을로 봄나들이 가볼까
사실 한적함 아래는 뜨거웠던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다.

고갯마루 전망대에 우뚝 서 있는 향로봉 지구 전투전적비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6·25전쟁이 교착 단계로 접어든 직후 국군 수도사단과 11사단이 향로봉 북쪽의 주요 고지를 확보하고자 북한군을 격퇴한 전투다.

그 결과 북한군은 큰 타격을 입고 남강 북쪽으로 후퇴했으며 국군은 향로봉 일대의 주요 고지를 모두 확보하게 됐다.

광복 이후 북한에 넘어갔던 진부령도 이때 남한이 수복한 것이다.

전적비 안내문에는 '맹호 수도사단 용사들은 단기 4284년(서기 1951년) 5월 7일부터 6월 9일까지 괴뢰 제5군단이 기한 89회의 반격을 격퇴 분쇄하고 설악산과 향로봉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적혀 있다.

또 진부령은 백두대간 684㎞ 종주의 시작과 끝이다.

남쪽으로 종주를 시작한다면 여기가 출발점이며, 아래에서 올라왔다면 향로봉을 지나 금강산 방향으로 올라가야 하는 탓에 휴전선이 열린 뒤에나 발걸음을 이어갈 수 있다.

미시령터널 개통 전까지 폭설이 내렸다 하면 미시령이 가장 먼저 통제되고 한계령이 막혀도 진부령은 차량 통행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상에 군부대 있어 항상 제설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부령까지 통제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폭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굽이굽이 별천지] 진부령 고개 넘어 소똥령마을로 봄나들이 가볼까
◇ 진짜 이름보다 별명이 더 유명한 소똥령마을
동쪽으로 진부령 굽이를 거의 다 내려왔다고 생각할 때쯤 호젓한 마을 하나가 나온다.

고성군 간성읍에 자리한 장신리로, 이 마을은 본디 이름보다 '소똥령마을'이라는 별명이 훨씬 유명하다.

계곡 옆으로 길게 이어진 마을이라는 뜻의 장신리를 두고 투박한 별명을 쓰는 이유는 마을의 역사와 닿아 있다.

옛 주민들은 간성에서 인제 원통으로 소를 팔러 가려면 능선을 넘다 이 마을 주막에서 쉬어가야 했다.

주막마다 쇠똥이 수북이 쌓이고 길에도 소똥이 천지였을 테니 자연스레 마을 이름이 소똥령이 됐다는 설이 가장 힘을 얻는다.

이 밖에도 오랜 세월 사람들이 고개를 넘으면서 봉우리에 자리가 패였는데 그 모양이 소똥을 닮았다는 설, 본디 동쪽의 작은 고개라는 소동령(小東嶺)이 자연스레 소똥령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유래가 어찌 됐든 소똥령이라는 이름에서 짙게 풍기는 시골 내음은 정겹고 포근하다.

[굽이굽이 별천지] 진부령 고개 넘어 소똥령마을로 봄나들이 가볼까
이 마을에도 분단의 역사는 서려 있다.

지금은 전체가 50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동네지만, 1960년대에는 30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당시 무장 공비 침투가 잦았기에 군인 가족이 많이 이주한 까닭이다.

집마다 아이들이 너댓명씩 있던 시절이라 1968년 마을 안에 초등학교까지 개교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휴전선 전방은 안정됐고 군인들도 떠나면서 15년 만에 학교는 문을 닫았다.

청운의 꿈을 품은 선비가 봇짐 메고 과거 보러 가던, 또는 보부상과 장꾼들이 돈 벌러 가던 옛 오솔길은 현재 숲길로 정비돼 탐방객 발걸음을 모으고 있다.

마을 끝에서 시작하는 숲길을 따라 500m가량 걸으면 칡소폭포가 나온다.

3m 높이로 그리 크지 않지만,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가 제법 웅장하다.

옛날부터 칡넝쿨로 그물을 짜 바위에 걸쳐놓으면 송어나 연어가 산란을 위해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다 많이 걸렸다는 얘기가 마을에 전해진다.

[굽이굽이 별천지] 진부령 고개 넘어 소똥령마을로 봄나들이 가볼까
◇ 마을 소멸 막고 활기 되찾고자 다양한 농촌 체험 활동 활성화
한때 300여 가구가 살았던 소똥령마을은 현재 30여 가구로 규모가 줄었고, 인구도 100명을 채 넘기지 못한다.

이에 주민들은 농촌전통테마마을을 운영하면서 사계절 관광과 농촌 체험 활동을 관광객에게 제공해 활기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

모내기와 나물 캐기, 옥수수·감자 수확, 밤 따기 등 계절마다 즐길 거리를 풍성히 마련하고 천연염색, 장승·솟대 만들기, 해양심층수 두부 만들기 등 연중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마을 인근에 운영 중인 유아 숲 체험원도 인기다.

나무 징검다리와 그네 등 자연 친화 놀이시설과 함께 생태 교육, 숲 놀이, 동화책 읽기 등의 프로그램이 월∼금요일 펼쳐진다.

이런 노력으로 소똥령마을은 2015년 7월 농협으로부터 팜스테이마을로 지정됐고, 2021년에는 강원도로부터 엄지척 명품마을에 선정됐다.

게다가 지난해 6월에는 진부령 국립자연휴양림 조성사업이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이에 고성군은 총사업비 86억원을 들여 2025년까지 간성읍 장신리 산1-2 일대 산림 3㏊에 방문자 안내센터와 숲속의 집, 산림문화휴양동, 주차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휴양림 이름을 진부령 대신 소똥령으로 바꾸고자 애쓰고 있다.

이남성(76) 이장은 "마을에서 이어진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계곡과 어우러진 바위들이 작은 금강산이라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며 "소똥령마을 역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주민들이 마을을 예쁘게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올봄 소똥령 숲길을 거닐며 만개한 진달래와 벚꽃을 보고 있으면 봄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힐 것이다.

[굽이굽이 별천지] 진부령 고개 넘어 소똥령마을로 봄나들이 가볼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