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R&D 투자, 절대금액이 부족하다
세계는 지금 과학기술이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기술 패권 시대다. 세계 경제의 미래가 달린 디지털, 그린, 문명의 3대 대전환도 과학기술이 핵심이다. 한반도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미·중 갈등도 과학기술이 중심이 된 기술 패권 경쟁이다. 기술이 경제는 물론 안보, 외교, 정치를 좌우하고 과학기술 역량 없이는 기업은 물론 국가도 경영하기 어려운 시대다.

우리 정부도 ‘과학기술 선도국’을 천명하며 강력한 과학기술 정책을 펴고 있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확한 문제 및 상황 인식이 중요한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큰 오해가 있다. 대표적인 오해가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는 많이 하는데 성과가 없다’는 주장이다. R&D 투자는 충분한데 R&D 체계 및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어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회에서도 ‘코리아 R&D 패러독스’라고 질타한다. 이 주장은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 구도에 관한 이해 부족에서 온 오해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먼저 한국이 R&D에 많이 투자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문제다. 이는 ‘R&D 집약도’라고 불리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세계 1, 2위를 다툴 만큼 높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현실은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큰 의미가 없고 R&D 투자 절대 금액이 중요하다. R&D 집약도는 일부 분야에 선택과 집중이 이뤄질 때 의미를 갖는다. 우리 경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강대국과 일부 분야가 아니라 거의 전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R&D 투자 절대 금액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R&D 투자 절대 금액은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미국의 9분의 1, 중국의 5분의 1, 일본의 2분의 1, 독일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앞으로 현 산업구조를 유지하는 한 R&D 집약도에 집착하지 말고 R&D 절대 금액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일본과 대등한 R&D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2배 증액을 목표로 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R&D 투자 기간이 문제다. R&D 성과는 장기간의 기술 축적에서 나온다. 오늘 투자하면 내일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경쟁국들인 미국, 유럽, 일본은 70년 전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만들던 나라로 100년이 넘는 기술 축적이 있다. 우리가 연 1조원 이상의 R&D 투자를 한 지 30년도 채 안 될 정도로 기술 축적은 상대적으로 일천하다.

이 두 가지 측면만 고려해도 ‘과학기술 선도국’을 위한 R&D 정책 방향은 명확해진다. 세계를 주도하는 혁신은 투입한 R&D 투자 절대 금액과 축적한 기간에 달려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의 효율적 R&D 전략으로 상대적 열세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뤄낸 그간의 우리 산·학·연·관의 노력은 존중돼야 한다. 이제 과학기술 선도국에 걸맞은 대규모이자 장기적인 R&D 투자 및 전략, 인재 육성, 체계 및 프로세스 혁신에 주력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