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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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닭 한 마리(1kg)에 1만원, 샴푸 한 통(400mL)에 1만원, 계란 6알에 8800원….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 도심 내 대형 마트 웨이트 로스에서 판매하는 생필품 가격이다. 고(高)물가에 생계 위기를 겪는 영국 런던보다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 암호화폐 관련 고액 자산가 등 슈퍼리치가 두바이에 몰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두바이 물가 상승률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물가상승률을 밑돌지만, 부동산 재계약 거래액이 반영되지 않아 실제로는 더 높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CBRE 그룹에 따르면 두바이 도심 내 단독 주택 평균 임차료는 올해 들어 26% 치솟았다. 두바이 아파트 연간 임차료는 평균 10만 디르함(약 3578만원)을 기록했다. 2개월간 28% 상승한 수치다. 고액 자산가가 밀집한 팜 주메이라 빌라의 경우 전년 대비 71% 상승했다.

두바이의 지난 2월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대를 기록했다. 미국(6%), 영국(10.4%)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두바이의 경우 물가상승률을 계산할 때 부동산 재계약 거래를 집계하지 않는다.

아부다비 상업은행의 모니카 밸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시장 추이가 인플레이션에 반영되면 실제 물가상승률은 더 높을 수 있다"고 했다.

물가가 치솟은 배경엔 슈퍼리치의 이주 행렬이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서방의 제재를 피하려는 러시아 올리가르히, 암호화폐 관련 고액 자산가, 중국에서 이주한 억만장자 등이 두바이로 몰렸다. 두바이 거주민이 받는 면세 혜택 때문이다. 300만명인 두바이 거주자의 90%가 외국인이다.

두바이의 헤드헌팅업체 최고경영자(CEO)인 메틴 미첼은 "두바이의 본질이 변하고 있다"며 "역동성은 늘었지만 부유한 사람만 쏠리는 '제2의 모나코'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모나코는 상속·증여세가 없다. 고액 자산가들이 투자이민을 가는 대표적인 국가다.

경제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소, 가정부 등 저소득층이 물가 상승세를 감당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두바이 저소득 직종의 지난해 임금 상승률은 물가상승률보다 낮았다.

UAE에는 세금이 없지만, 각종 수수료가 생계비 부담을 늘린다.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는 데에 수 백만원이 든다. 전기 요금에는 '주택 요금'이란 별도 항목이 포함되고, 공공시설을 사용할 때도 '지식','혁신' 수수료를 뗀다.

외국인이 몰리자 교육비도 크게 뛰고 있다. 제임스 뮬란 교육 자문가는 "두바이의 사립학교 등록금 평균값은 연 1만달러에 육박한다"며 "자녀가 크게 되면 두바이를 탈출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